염경엽(45) 넥센 감독은 야구계의 '만수(萬數)'다. 꼼꼼한 공부와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많은 작전과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는 "공개할 수는 없지만 준비해둔 게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초보 사령탑이지만 경기를 읽는 눈은 보통이 아니라는 평가다.
창단 후 첫 가을잔치에 나선 넥센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1승만 남겨두고 있다. 2차전을 연장 끝내기로 이긴 염 감독은 경기 뒤 "아, 쓰러질 것 같다"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규시즌 때보다 몇 배 집중하고 몇 배 더 머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
염경엽 감독은 단기전 들어 용병술이 확 바뀌었다. 선수단 분위기는 편안하게 풀어주되 경기 운영은 냉정하고 과감하게 한다. 1, 2차전 선발 나이트와 밴헤켄은 각각 6⅓이닝 2실점, 7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투구수는 각각 96개, 92개였다. 더 던지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련을 두지 않았다. 마무리 손승락도 두 경기 모두 8회에 조기 투입했다.
염 감독은 정규시즌에서 위기에 몰린 투수를 그냥 놔뒀다가 경기를 그르친 적이 몇 번 있다. 그땐 "반성한다.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만회의 기회가 없다. 그는 선수의 자존심을 머리에서 지웠다. "선발이 6이닝을 막는 싸움"이라고 선을 그었다. 염 감독의 선발 조기 교체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뒤에 나온 중간 투수들이 위기를 비교적 깔끔하게 넘겼다.
◇불펜은 3명이면 충분하다
넥센은 2차전까지 투수 5명을 썼다. 외국인 선발 2명에 강윤구 한현희 손승락이다. 두산은 넥센보다 2명 많은 7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소수 정예' 넥센 불펜은 2실점을 했다. 두산은 불펜진이 3실점하며 이틀 연속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넥센은 준플레이오프 출장자 명단에 투수 11명을 집어넣었다. 염 감독은 불펜 투수 7명 중 정예를 추렸다. 강윤구와 한현희다. "우리 불펜 중 둘은 구위로 상대와 붙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키는 야구가 이뤄져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 2차전에서 둘은 필승 듀오 임무를 맡았다. 한현희가 2경기에서 각각 1이닝씩 던져 점수를 주지 않았다. 2차전에선 연장 10회 손승락을 구원해 승리투수가 됐다. 강윤구는 ⅓이닝 무실점이다. 마무리 손승락이 1, 2차전에서 1점씩 내줬지만 "최고의 카드"라는 염 감독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공 하나 하나에 작전 또 작전
1, 2차전에서 염 감독은 경기 후반 주자가 나가면 1구 1구마다 사인을 내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포스트시즌에선 점수가 많이 나지 않는다. 뻥뻥 쳐서 이기는 건 10경기 중 한두 경기 있을까 말까 하다"고 말했다. 바꿔 생각하면 감독의 역할은 커진다. 정규시즌처럼 믿고 맡기기보다 과감하고 확실한 조율이 필요하다.
염 감독은 2차전 2-2 동점이던 9회 말 1사 만루 서동욱 타석에서 갑자기 스퀴즈 번트를 지시해 두산 내야를 긴장시켰다. 서동욱은 넥센에서 번트를 가장 잘 대는 선수다. 비록 파울이 돼 실패로 끝났지만 염 감독은 "치는 건 3할이지만 스퀴즈는 50대50이 나온다"고 말했다. 성공했다면 끝내기였다.
2차전 연장 10회 말 김지수가 친 끝내기 안타도 염 감독의 히트 앤드 런 사인이 발판 역할을 했다. 두산 투수 오현택이 주자에게 너무 신경을 쓰다 견제 실책을 범해 1루 주자 박병호가 3루까지 갈 수 있었다. 염경엽 감독은 "공 하나 하나마다 타이밍을 잡고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염경엽 감독은 이장석 넥센 구단 대표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4강 진출로 나를 선택해준 것에 대한 1차 보답은 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시즌에서 마지막 보답을 하고 싶다"고 더 큰 꿈을 얘기했다. 경기를 복기하고 다음 날 타순을 짠 뒤 잠자리에 드는 그는 매일 밤 꿈에서 수십 번의 야구 경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