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1회 21세 이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3·4위전에서 니카라과를 물리치고 초대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대부분 프로 2군과 대학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은 함께 훈련을 하며 호흡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던 열악한 조건 속에서 목표였던 3위권을 달성했다. 이수민과 구자욱(이상 삼성), 김도현(SK) 같은 프로 유망주와 최동현(동국대) 등 아마 선수의 활약이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숙제도 남겼다. 예선리그에서 대만에 1-7로 역전패했고, 슈퍼라운드(본선리그) 2차전에서는 일본에 0-1으로 패했다. 분명 대표팀에 완벽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두 나라에 모두 패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일본과 대만은 결승에서 맞붙어 대만이 9-0 승리로 초대 대회 우승을 가져갔다. 미국과 쿠바가 빠진 대회에서 아시아권 국가에 결승전을 내줬기에 결과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대표팀 단장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재환 일구회 회장은 해외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사고 없이 선수들의 귀국을 이끌었다. 살림살이를 맡으며 선수들의 선전을 지원했다. 원로 야구인인 이 회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향상된 세계 야구 수준을 확인했다. 대만과 일본뿐 아니라 야구 변방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도 향후 몇 년 뒤엔 한국을 위협할 나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본의 중요성을 실감한 그는 원로 야구인들이 어린 선수들의 기초 능력 향상을 위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랐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 이재환 일구회 회장을 만나 미래를 이끌어갈 야구 유망주들과 함께한 국제 대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윤)="이번 '제1회 21세 이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단장으로 참가하셨어요. 야구 원로로서 보신 세계 수준은 어땠나요?"
이재환 일구회 회장(이하 이)="첫 경기를 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가 앞선 경기를 진행 중인 니카라과의 경기를 봤어요. 경기력뿐 아니라 열정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우리 팀의 선전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체코도 배팅과 기본 운동 능력 그리고 체격 조건이 좋았습니다."
윤="한국 야구 원로로서 야구 변방국들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셨겠어요."
이="우리 나라는 누가 뭐라고 하든 세계를 제패한 나라이지 않습니까? 분명 기본기는 우리 선수들이 앞선다는 생각을 했죠. 다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전반적으로 어떤 나라의 전력이 우세했나요? 역시 일본과 대만이었나요?"
이="아무래도 일본이 첫 번째 경계대상이었고 대만 역시 마찬가지였죠. 대만의 경우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선수들보다 더 잘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내야진의 움직임이 상당히 민첩했거든요. 대만 관계자들도 이번 대표팀이 어리지만 국가대표팀 못지 않는 전력으로 구성됐다고 하더라고요. 또 앞으로도 그런 선수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선수들이 향후 대만을 상대로 경기를 치를 때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는 조금 어린 느낌이 들긴 했어요. 그래도 기초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윤="예상치 못한 복병은 없었나요?"
이="의외로 뉴질랜드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초적인 부분이 미흡해 실책이 많아서 성적이 부진했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봐요."
윤="우리 나라의 선수 및 코칭스태프 구성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일본의 경우에는 90% 이상이 프로 구단에 속해 있는 선수를 구성해왔어요. 우리는 그렇지 못했죠. 우리 나라 야구를 높이 평가하고 주목하는 나라들도 많은데 그런 부분은 다소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였고요. 대부분 대학 감독으로 코치진이 구성됐는데 조금은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코치는 그 분야에 적절한 전문가가 맡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윤="보통 국제 대회가 있으면 선수들의 군 문제가 먼저 화두가 됐곤 했죠. 이런 대회에 좋은 선수가 더 많이 참가한다면 선수 성장은 물론 야구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국제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최고의 선수를 선발해 구성해야 외국에 가서 위상을 높일 수 있죠. 스타 플레이어들도 참가할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어요."
윤="예전에도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프로에서도 좋은 선수로 거듭났는데요. 그 경험이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그렇죠. 그래서 저도 그 대회에 의미가 크다고 봐요. 이런 대회가 많으면 선수들의 기량 증가뿐 아니라 새로운 선수의 발굴에도 용이하죠. 그리고 큰 무대에서 뛰어본 경험이 국내 무대에서도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고요. 특히 대만 같은 나라는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를 하는 분들도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 보이더라고요."
윤="이 대회는 앞으로 몇 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건가요?"
이="아직은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죠. 격년제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윤="대회 기간 내에 힘겨운 스케줄을 소화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마치 프로야구 일정처럼 매일 경기를 했어요. 5경기를 하고 하루 쉬었죠.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체력이 문제겠느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오히려 경험이 부족하니 쉽게 적응이 안 됐을 거에요. 무엇보다 가기 전에 훈련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4~5일 정도는 했지만 부족했죠. 선수끼리의 화합이나 손발을 맞추는 부분이 더 필요했죠.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요."
윤="회장님께서도 예전에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국제 대회에 참가하신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단장으로는 처음이셨죠?"
이="네. 처음이죠."
윤="아무래도 단장으로 참가하시면서 느낀 보람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사실 선수 시절에는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었죠. 코칭스태프로 갔을 때는 선수들을 아우르는 데 매진했고요. 그런데 단장으로 가니까 책임감이 더욱 크더라고요. 실력이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많은 인원을 통솔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은 사고 없이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컸죠."
윤="현장에서 선수들과 마주하신 감회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저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는데 한 스태프가 '위험하니까 운동장에 안 계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일행들이 걱정이 됐나 봐요. 서운하기도 했죠."
윤="일구회 회장님으로 계시기도 하는데요. 리틀야구도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지원을 했으면 좋겠죠. 지금은 힘이 닿는 데까지 매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윤="일본을 보면 야구 원로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저도 이번 대회를 다녀오면서, 개회식에서 왕정치씨를 만났어요. 그분이 어린이를 위해서 야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느낀 점이 생겼죠. 우리 나라는 언제부터인가 50~60대만 되면 '옛날 사람'으로 여겨졌어요. 감독도 대부분 젊은 분들이 선임되는 추세죠. 저는 오래 전부터 어린 선수들의 기초 확립을 위해 원로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봐요.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는 투입이 돼 좋은 야구를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저도 투수 코치 출신이지만 기초는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단장님으로 해외에 다녀오신 부분이 계기가 돼서 마음 속에 갖고 계시던 포부를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선동열 전 KIA 감독이 '선수들이 아마추어에서 프로에 올 때 기초를 잘 배우고 올라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이번 대회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어요. 일본·대만 선수들과 우리 나라를 비교하면 기초적인 부분에서 아쉬움도 있었어요. 대만이 우승을 한 것도 그런 장점이 발휘됐기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일본을 9-0으로 이겼으니까요. 어떤 분야이든 기초가 중요하죠. 어느 정도 선까지는 올라가지만 최상의 고지는 기초 없이는 힘들죠."
윤="향후 회장님께서 구상과 계획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뭉쳐야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구인 전체가 한마음으로 합심해서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