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0·LA 다저스)은 지난 25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시즌 4패째를 당했다. 올시즌 네 번 선발 등판에서 모두 패전투수가 됐다.
하지만 6이닝을 5피안타 1실점으로 막고 시즌 1호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첫 두 경기에선 각각 77구씩만 던지며 '예열'을 했다. 세 번째 등판이던 19일 콜로라도전에선 홈런 세 방을 얻어맞는 최악의 경험을 했다. 1경기 3홈런은 개인 최다 기록이다.
네 번째 등판은 소득이 많았다. 두 경기 연속으로 90구 이상을 던졌고, 빠른공 구속은 부상 이후 최고였다. 체인지업의 위력도 여전했다. 지난 네 차례 경기를 돌아보면 류현진에게 일관된 흐름 몇 가지가 발견된다. 메이저리그 투구추적시스템으로 살펴본 결과는 이렇다.
▶점점 좋아지는 빠른공
25일 등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빠른공 스피드였다. 평균 구속이 시속 90.6마일(145.8km)로 측정됐다. 네 경기 만에 처음으로 90마일의 벽을 넘었다. 2013~2014년 평균인 시속 91.3마일(146.9km)에는 못 미치지만 낙관적인 결과다. 이날 류현진은 던진 시속 90마일 이상 빠른공은 총 23구. 2회말 브랜든 크로포드를 상대로 6구째 시속 92.7마일(149.2km)을 던져 최고 구속을 기록했다.
이전 경기까지 류현진의 최고 구속은 19일 등판에서 기록한 시속 91.7마일이었다. 4일 만에 최고 구속이 시속 1마일이나 상승했다. 류현진의 몸과 마음이 점점 부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대로라면 여름에는 시속 150km가 넘는 빠른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빠른공의 상하 움직임, 즉 수직 무브먼트는 전성기 시절보다 1.2인치(3cm) 정도 부족하다. 빠른공의 회전수도 분당 2067회로 메이저리그 평균인 분당 2266회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회전수와 구위, 성적과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구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헛스윙 비율이 12.3%에서 15.9%로 늘어난 건 고무적이다. 전광판과 스피드건에 표시되는 구속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빠른공을 제대로 제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게 드러났다.
▶ 괴물 체인지업은 그대로
샌프란시스코전의 화제거리는 체인지업 구사율이었다. 류현진은 평소 경기에서 투구의 20% 가량을 체인지업으로 던져왔다. 하지만 25일엔 96구 중 40구가 체인지업이었다. 빠른공(30개)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경기 뒤 류현진은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을 분석한 결과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록으로 본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여전히 강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스윙 유도율, 스윙 시 헛스윙 비율, 체인지업을 친 타구의 속도 등 항목에서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훨씬 좋다. 빠른공과의 낙폭 차이는 오히려 근소하게 나아졌다.
25일엔 한가지 달라진 점도 있었다. 과거 류현진은 왼손 타자에게는 빠른공과 슬라이더를 80% 이상 던졌다. 그러나 이날은 왼손 타자에게도 절반 가까운 공을 체인지업으로 던졌다. 정교한 제구력과 자신감 없이는 선택할 수 없는 전략이다.
▶밋밋해진 슬라이더, 떨어진 팔 위치
어깨 부상을 당하기 전인 2014년 7월. 류현진은 ‘빠른 슬라이더’를 새롭게 투구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시속 87마일(140km)이 넘는 슬라이더는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한 '마구'였다. 하지만 이 슬라이더는 어깨 부상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올해도 류현진은 슬라이더를 던진다. 하지만 예전의 예리함은 사라졌다. 스윙 시 헛스윙 비율은 26.5%에서 21.4%로 줄어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도 달라졌다. 좌우 움직임은 예전과 비슷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움직임이 8cm 정도 줄어들었다. 야구공 한 개보다 큰 차이다.
밋밋해진 공의 움직임은 떨어진 팔 높이와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류현진이 공을 놓는 위치(릴리스 포인트)는 부상 전보다 3~10cm 정도 아래로 떨어졌다. 보통 팔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류현진의 경우는 어깨 수술의 여파로 볼 수 있다.
▲릴리스 포인트 유지
하지만 희망이 보인다. 팔 높이는 첫 경기 이후 3cm 정도 높아졌다. 4번째 경기에서는 3번째 경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투구 수도 두 경기 연속 90개를 넘겼다. 이전 경기와 달리 경기 후반에도 구속이 줄지 않았다.
지금 류현진에게는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로 '경기 플랜'을 이행하는 게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홈런 세 방은 구위보다는 타자가 치기 좋은 코스로 들어간 제구의 문제였다.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25일 경기는 나아진 제구와 경기 계획의 산물이었다. 4경기에서 나타난 릴리스포인트와 구속 변화는 류현진이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박기태(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