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중(28)에게 '감격시대'는 연기활동의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남았다. 지난 3일 종영한 KBS 2TV 수목극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이하 '감격시대')을 통해 과거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 등에서 보여준 '꽃미남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일부 벗어던지는데 성공했다. 전작에서 귀공자풍의 외모와 시크함을 주로 부각시켰던것과 달리 이번엔 전설의 주먹 시라소니 역을 맡아 '상남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1930년대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데다 24부작이란 긴 호흡을 소화해야 했음에도 큰 문제없이 무난한 연기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방영 후반부에 이르러 '감격시대'가 작가 교체, 출연료 미지급 사태 등으로 시끄러웠지만 김현중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작품을 지켜냈다. 김현중은 "이 작품이 실패하면 더 이상 나를 불러주는 사람도 없을거란 생각을 했다"며 이번 작품에 느낀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연기력이 한층 좋아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그동안 보고 느끼고, 또 웃고 슬프고 했던 경험들이 연기에 묻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대본을 보고 글을 이해했다면, 이번엔 인물에 대한 상상을 많이 했다. 신기한 것은 대본 연습할 때는 100번을 읽어도 절대 눈물이 안 나오는데, 현장에 가서 신정태가 되면 눈물이 나온다."
-'감격시대'가 김현중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배운 것 같다. 그동안은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왔는데, 여기서는 조·단역 연기자들부터 보조출연자, 무술진 등 정말 많은 분들과 호흡을 맞췄다. '드라마 한편에도 모든게 담겨있구나. 작은 지구'라는 생각을 했다. 다들 1930년대 상하이에서 살고있는 사람들 같았다. 30년대나 지금이나 별 다른게 없는 것 같다. 살기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느껴졌다."
-연기 뿐 아니라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제작비 미지급, 촬영중단 등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쓰면 연기를 못한다.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촬영이 중단되도 '대본 암기하라고 중단됐나보다'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이번 작품이 주연배우로서는 거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했다. '이번에 잘 안 되면 날 써주는 데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다. 4일만에 2회 분량을 찍기도 하고, 24시간 메이크업한 채로 대기하기도 했지만 긴장은 놓지 않았다. 목도, 무릎도 다치고 손에 평생 남을 상처도 생겼지만 훈장이라 생각한다."
-'꽃미남' 캐릭터과 이별했는데 아쉽진 않나.
"6개월동안 너무 상남자 캐릭터에 머물러 있다보니 좀 질린건 사실이다. 이제 꽃미남으로 돌아가려 한다(웃음). 머리카락부터 기르고 염색도 좀 하고 싶다. 머리가 짧다보니 자꾸 모자를 쓰게 되고 사람이 어두워지더라. 사실 이제 29살인데, 진짜 남자다운 역할을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남자들끼리 어울리는 게 좋다. 남자끼리 연기를 하게되면,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또 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경쟁하면서도 합을 맞춰서 같이 올라가려는 미묘한 배려 말이다."
-'꽃보다 남자'를 함께 했던 이민호는 이번에도 고등학생 연기를 하고 대박을 쳤다. 부럽지 않았나.
"이민호는 캐릭터 연기를 잘하는 친구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해도 된다. 다만 스스로 '화려한 것 보다는 내 색깔을 우선 만들자'고 다짐한 것이 있다. 또 아이돌 기간을 거쳐오다보니 화려한 것에 물린 면도 있다. 판타지나 꿈같은 스토리는 내 취향이 아니다. 우선 메시지가 담겨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평소에도 SF같은 장르는 잘 안 보는 편이다."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 역할이 자신에게 왔어도 안 했을 것 같나.
"안했을 것 같다. 물론 도민준은 김수현의 역량이 워낙 좋아서 잘 살린 것 같다. 내가 그 역할을 맡았으면 그렇게 안 됐을 것이다. 우선 역할이 이해가 안 됐을 것 같다. '왜 마법을 쓰지'라고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4차원'이라고 불리는데, 의외로 현실적이다.
"나는 솔직할 뿐인데 사람들이 못받아들일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고싶은 말 하면 '돌아이'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웃음).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들이 예스라고 할 때 같이 예스라고 해야 예쁘게 봐준다. 나는 소신대로 살 뿐이다. 대본을 봐도 내가 납득이 돼야한다. 꽃미남 역할을 받아도, 거울을 보고 할 수 있겠다 하면 하는거고, 아니면 안하는 거다."
-극중 시나소니를 연기했다. '박치기를 잘하는 왜소한 체격'이란 실제 시라소니에 대한 묘사와는 좀 달랐다.
"기존의 시라소니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면, 내가 캐스팅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미화시키려고 한 것이라 본다. 내가 연기한 신정태를 통해 그 시대가 얼마나 치열했구나를 봐 주시면 좋겠다. '박치기를 왜 안하나'는 말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죽자고 박치기만 하면 재미도 없고 '액션 거지같네'라는 얘기가 나올 것 아닌가(웃음). 화려한 연출을 위해 박치기는 마지막 회에서만 보여줬다."
-시라소니에 대한 자료도 보고 연구해봤나.
"촬영 들어가기 전 조금 뒤져봤다. '40:1의 싸움에서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이겼다' '패거리를 몰고 다니던 김두한과는 달랐다' 등의 얘기가 많더라. 하지만 어떤 자료를 보니 나쁜 짓도 좀 하셨더라. 딱 나쁜 얘기가 시작되는 부분의 첫 줄을 읽고는 덮어버렸다. 나 스스로 신정태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또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그렇게 될까 걱정됐다."
-김수현·이민호 등 한류스타 후배들의 활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나.
"떠오르는 태양을 막을 수 없는거다. 1세대 한류스타들도 계속 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멋있게 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떠있으려고 아등바등하고싶지는 않다. 인기 지키려고 신비주의를 고수하기 보다는, 내 나이에 맞는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