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로 살면서 자신의 이름 뒤에 '신(神)'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이다. '양신' 양준혁(49) MBC SPORTS+ 해설위원과 '종범신' 이종범(48) MBC SPORTS+ 해설위원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KBO 리그 역사에서 1993년은 두 '레전드'를 배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양준혁은 영남대를 졸업한 뒤 상무를 거쳐 그해 삼성에 입단했다. 고향팀 삼성이 1992년 1차 지명 선수로 왼손 투수 김태한(현 삼성 수석코치)을 선택하자,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 가지 않기 위해 군복무를 택했다. 삼성은 그런 양준혁을 1993년 1차 지명했고, 그는 무사히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이종범은 건국대를 졸업하던 1993년 고향팀 해태(KIA의 전신)에 1차 지명 신인으로 입단했다. 훗날 자신의 아들 이정후가 넥센에 2017년 1차 지명을 받으면서 사상 최초로 부자가 모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대학 무대를 평정하고 온 양준혁과 이종범의 대결은 프로에 와서 더 불꽃이 튀었다. 앳된 얼굴의 두 신인 타자가 이미 프로에서 숱한 업적을 쌓은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양준혁은 명문구단 삼성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찼고, 이종범은 스타 군단 해태의 1번타자이자 주전 유격수를 맡았다.
신인으로는 믿기지 않는 성적도 뒷받침됐다. 1993년 양준혁은 타율 0.341을 기록하면서 홈런 23개를 때리고 90타점을 올렸다. 타격은 물론이고 출루율 0.436과 장타율 0.598 1위에 올랐다. "신이 내린 선구안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종범 역시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로 활약하면서도 타율 0.280에 홈런 16개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도루 73개를 해내고 85득점을 올리면서 "이종범을 1루에 내보내면 3루타를 맞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왔다.
프로 데뷔 10년 만에 프로야구 최고상인 MVP에 오른 김성래(왼쪽·삼성)와 치열한 경합 끝에 양준혁(삼성)이 신인왕을 차지함으로써 삼성이 `93년의 대상을 싹쓸이 했다(한국야구위원회)
일생에 단 하나뿐인 신인왕을 놓고 펼쳐진 치열한 승부는 데뷔 첫 시즌 타격왕을 차지한 양준혁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종범도 빈 손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그해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황금빛 신인'의 위용을 뽐냈다.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기염도 토했다. 지금도 꽤 많은 야구팬들은 '어, 그 해 신인왕은 이종범 아니었어"라고 헷갈리기도 한다.
화려한 출발을 함께한 둘은 이후에도 숱한 기록와 명장면을 써내려가면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전설로 이름을 날렸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프로로서 그리고 팀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로 기억됐다. 둘은 현재 같은 방송사에서 해설위원으로 한솥밥을 먹고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