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왼손 투수 워렌 스판은 "타격은 타이밍, 투구는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 투구의 타이밍을 빼앗는 이가 있다.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다.
도루성공률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여럿이다. 우선 포수의 어깨가 있다. 2015년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내셔널리그 도루저지율 1위는 워싱턴의 윌슨 라모스였다.
그는 44.4% 성공률로 주자 32명을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냈다. 아메리칸리그 1위는 토론토의 러셀 마틴. 저지율은 44.4%로 라모스와 같지만 아웃시킨 주자는 24명이었다. 지난해 양대리그 전체 도루저지율이 29.8%였다는 점에서 대단한 수치다.
투수의 역할도 크다. 0.1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주자를 잘 묶어두는 견제 능력, 세트포지션에서 빠른 동작으로 투구를 하는 능력은 포수의 어깨 못지않게 중요하다. 휴스턴 포수 행크 콩거는 지난해 역대 최악 수준의 도루저지율 2%(도루저지 1회·도루허용 42회)을 기록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휴스턴 투수진 책임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베이스를 훔치는 주자의 능력일 것이다. 발이 빠른 선수가 도루를 잘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육상 스프린터를 데려놓는다고 해서 도루를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피드와 함께 스타트, 슬라이딩은 도루의 '3S'로 꼽힌다.
하나 더 주목할 요소를 들고 싶다.
볼카운트다.
야구는 스트라이크 세 개면 아웃인 경기다. 타격이나 투구의 결과에 볼카운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자에게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기록된 도루는 2505개, 도루실패는 1064개다. 총 3569회 도루시도 중, 볼카운트 0-0 상황은 838회로 23.5%였다. 흥미롭게도 같은 해 메이저리그 총 투구 수(70만여 개)에서 0-0 상황이 차지하는 비율과 거의 같았다. 지난 5년, 지난 10년을 기준으로 끊어봐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12개 볼카운트 중 모든 타석에서 반드시 기록되는 0-0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도루시도가 가장 적었던 볼카운트는 3-0이다. 볼을 하나 기다리면 1루 주자는 자동 진루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다. 그래도 해마다 극소수 선수가 3-0 카운트에서 도루실패를 기록하고는 있다.
1-0 카운트에서의 도루시도는 거의 매년 0-1 카운트보다 많았다. 다소 특이한 결과다. 초구에는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확률이 볼보다 높다.
즉 1-0 상황은 0-1 상황보다 적다. 그럼에도 도루는 많다.
여기에 1-0에서 투수가 패스트볼을 던질 확률은 67%에 이른다. 0-1에서는 57%다. 투수가 빠른공을 던질 때 도루성공률이 근소하지만 낮다는 점에서 더 물음표가 붙는 결과로 볼 수 있다.
횟수 차이는 있지만, 도루성공률은 두 볼카운트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도루성공률은 거의 대부분 볼카운트에서 70%대를 보인다. 예외가 있다면 풀카운트다. 3-2에서 도루성공률은 50%대로 확 떨어진다. 이 카운트에서 도루가 더 어려워진다기 보다는, 평소 잘 뛰지 않는 느린 선수도 뛰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도루가 많은 선수에게는 특징이 있다. 초구에 즐겨 뛴다는 점이다. 전체 도루시도에서 초구가 자치하는 비율은 20%대 초반이다. 지난해 16도루의 마이클 테일러, 진 세구라(25도루), 알시데스 에스코바르(17도루) 등이 초구 도루를 선호했다.
반대로 뉴욕 양키스의 발빠른 외야수 브렛 가드너는 도루 20개를 성공했지만, 초구에서는 단 한 번 시도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도루실패였다. 마이애미 포수 J.T. 리얼무토는 무려 58%가 넘는 상대의 도루시도가 초구에 집중돼 있었다
투수들의 사소한 버릇을 파악하는 것이 타격에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주자의 볼카운트별 도루 성향도 도루저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레이더 기술을 통해 공이 몇 바퀴를 회전하는지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시대다. 수비와 주루는 타격이나 투구에 비해 통계적인 발전이 더뎠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선을 보인 스탯캐스트는 포수의 송구속도, 2루수나 유격수의 글러브에 들어가기까지 시간, 주자의 리드폭, 첫 발을 내딛는 시간, 순간 최고속도까지 측정하고 있다.
주루 통계도 주자들의 능력치를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매우 가까운 미래에.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
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