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오키나와 전지훈련.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해민(30)은 꽤 긴 시간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놨다. 7개월이 지난 지금, 박해민은 이제 그 답을 찾은 듯하다. 팀내에서 유일하게 타이틀 경쟁을 벌이면서 약점들도 보완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결국 8위로 또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 삼성에서 유일하게 타이틀에 도전하는 선수가 박해민이다. 박해민은 도루 31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경쟁자인 2위 심우준(KT, 30개)과는 1개 차. 남은 경기수는 심우준이 2경기 더 많아 치열하다. 만약 박해민이 도루 1위에 오른다면 2015~18시즌 4년 연속 도루왕에 이어 통산 5번째다. 도루왕을 5번 차지한 선수는 프로야구 초창기 '대도'로 유명했던 김일권(1982~84, 89-90)이 유일하다. 박해민은 도루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장타와 출루율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도루의 중요성은 예전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박해민은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고 싶어한다. 그는 "솔직히 시상식에서 소외감이 들기도 한다. 홈런왕, 타점왕보다 큰 관심을 못 받는 게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해 목표로 했던 80% 성공률엔 미치지 못했지만, 누상에서 투수와 포수를 흔드는 역할도 확실히 했다.
도루보다 더 눈에 띄는 기록도 있다. 박해민의 홈런 숫자다. 19일 현재 박해민은 1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12년 프로 데뷔 이후 두자릿수 홈런은 처음이다. 타자친화적인 홈구장 라이온즈파크(7개)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똑딱이' 이미지가 강했던 박해민에게 의미있는 기록이다.
박해민은 올시즌을 앞두고 타격에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박해민은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뒤쪽에 무게 중심을 뒀다. 김용달 타격코치님과 상의해 중심을 앞으로 옮겼고, 히팅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가려고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준비 루틴, 배트를 잡는 손의 위치, 높이 등 모든 걸 바꿨다. 덕분에 뜬공/땅볼 비율이 데뷔 후 가장 높은 1.20으로 올라갔고, 자연스럽게 홈런이 늘어났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해민이가 장타를 노리려고 타격폼을 바꾼 건 아니다. 그런데 정확도가 좋아지다 보니 홈런이 늘어났다"고 해석했다. 올시즌 박해민의 타율은 0.298(466타수 139안타). 극도의 부진을 겪었던 지난해(0.239)를 뛰어넘어 2016년 이후 개인 두 번째 3할 타율도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박해민 최고의 강점인 수비력도 여전하다. 박해민의 올시즌 타구처리율은 54.2%다. 외야수 중 단연 1위다. 수비가 좋기로 소문난 NC 애런 알테어(49.7%, 2위)보다 더 높다. 통계사이트 스탯티즈가 제공하는 평균 대비 승리기여(WAA)에서도 1위다. 빠른 발과 판단력, 타구를 쫓는 눈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다. 지난 17일 한화와 더블헤더 1차전에선 상대주자가 베이스를 밟지 않은 것을 잡아내, 어필아웃으로 연결하는 눈썰미도 뽐냈다. 아쉬웠던 공격능력까지 업그레이드된 덕분에 공헌도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박해민의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WAR, 스탯티즈 기준)는 2.64로 팀내 4위다. 하지만 수비와 주루까지 합한 전체 ERA는 4.08로 구자욱(3.76)보다 더 높다. 지난 겨울, 연봉협상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2020시즌 삼성 최고의 야수는 누가 뭐래도 박해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