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가을, 서울 신사동의 허름한 건물 지하 1층. 20평 남짓 월세 사무실엔 '현기획'이란 간판이 내걸렸다. 직원은 사장 양현석을 포함해 달랑 4명. 사무실 겸 안무실 집기는 낡아빠진 쇼파와 책상 하나가 다 였다. '현기획'은 킵식스란 남성 3인조를 야심차게 선보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현기획'은 불과 8개월 만에 폐업, 간판을 내렸다. 하지만 그 실패는 끝이 아니었다. 16년 후, 직원 150명에, 연매출 781억원(2011년), 주가총액 현재 9959억원(2012년 9월 27일 현재)을 기록하고 있는 굴지의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모체가 됐다. 싸이와 빅뱅, 2NE1 등 국내를 넘어 해외 음악 시장을 장악한 스타들의 중심엔 물론 'YG의 심장' 양현석(43)이 있다. "예전 꿈은 국내 1위 기획사가 목표였죠. 그런데 어차피 꿈은 크게 가져도 되는 거란 생각이 들어 작년부터는 세계 넘버원 레이블이 되겠다고 말해요. 예전엔 허튼소리였겠지만, 이젠 현실이 되는 세상이 왔죠. 세계 최고가 먼 꿈이 아닙니다."
'69년생'동갑내기 일간스포츠의 창간을 기념해 YG의 양현석 대표를 서울 합정동 사옥에서 만났다. 세간의 시선은 '수천억원대'재산에 꽂혔지만 2시간 여 인터뷰 내내 양 대표의 입에선 "즐겁고 신나는 일"이란 얘기가 수도 없이 반복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보고 들으면서 전세계 2억명이 3분동안 깔깔 웃었다는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가 전세계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요."
양현석이 말하는 '국가대표'엔터기업 YG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한국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청사진을 함께 그릴 수 있었다.
▲"싸이의 성공 비결은 차별화"
-싸이 얘기 먼저 하죠. 요즘 소속 가수들이 잘돼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것 같아요.
"자다가도 웃음나는 건 싸이 같아요. 미국에서도 거의 매일 통화했는데 이 상황이 믿기질 않아서 잠을 못잤대요. 눈을 감아도 꼭 영화처럼 자꾸 장면들이 떠오르니까요. 싸이가 잘 되니 당연히 좋지만, 더욱 좋은 건 한국 가수가 이렇게 된 것이죠. 어렸을 때부터 가요 보다는 팝을 많이 들었고 늘 아이튠즈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해 들었거든요. 그래서 빌보드 순위보다 전 아이튠즈와 훨씬 현실적이죠. 늘 팝가수만 있던 차트에서 한국어 노래가 1위를 하니 정말 '와'라는 탄성 밖에 안 나오더군요."
- 여러 가수들이 미국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왜 하필 싸이가 성공했을까요.
"차별화죠. 미국, 아니 전세계에 싸이 같은 가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죠. '웃겨서 뜬거다, 코미디가 먹혔다'는 얘기를 하던데 그건 말도 안돼요. 물론 웃음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본질인 음악이 좋지 않으면 절대 그렇게 돈주고 노래를 사지 않죠. 싸이도 그렇고 YG의 음악은 아시아 시장 보다는 미국 팝시장에 맞는 음악을 합니다. 싸이의 성공을 보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악이란 걸 통해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되고 3분 30초의 감동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강남스타일'을 처음 들었을 때 양현석 사장이 '대박'을 장담했다고 하던대요. 남다른 '촉'이 있는 건가요.
"네 확실히 감이 왔어요. 가수들만큼 노래나 랩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차고난 감은 있어요. 타이틀을 결정하고 히트를 예상하면 대부분 들어맞죠. 특별해서가 아니라 대중과 똑같아서라고 봐요. 대중과 같이 공유를 하니까 가능하겠죠. 대중의 수준을 낮게 평가하면 절대 안돼요.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