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이 두산보다 훨씬 앞서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던 팀들도 가을에 만나는 두산을 두려워한다. 수많은 포스트시즌 경험과 그 안에서 얻은 자양분이 두산 선수들의 몸 안에 그대로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5경기 모두 1점차, 역대 최고 명승부
실제로 두산은 그저 여러 차례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것뿐만 아니라 숱한 명승부를 만들어 냈다. 특히 2010년 삼성과 맞붙은 플레이오프는 지금까지도 '크레이지 시리즈'로 기억되는 명장면 열전이자 감동의 드라마였다. 5차전까지 끝장 승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5경기가 모두 1점 차 승부로 끝났다. 당연히 역대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5경기 모두 엎치락뒤치락 시소게임을 거듭한 끝에 8회 이후에야 승부가 갈렸다. 다 끝났다고 생각된 순간 스코어가 뒤집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양 팀은 하루하루 내일이 없는 혈전을 이어갔다. 두산은 5경기 동안 무려 35명(경기당 7명)의 투수가 출동하는 인해전술을 펼쳤다. 특히 두산 고창성은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10경기 모두 등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도 투수 30명(경기당 6명)을 투입하는 총력전으로 맞섰다. 1차전에선 삼성이 8회 박한이의 역전 3점홈런을 앞세워 6-5로 역전승했고, 2차전에선 두산이 4-3으로 반격했다.
3차전은 역사에 남을 혈투였다. 연장 11회까지 4시간 58분이 걸렸다. 두 팀 합쳐 투수 16명(삼성 7명·두산 9명)이 등판하고 볼넷 19개(삼성 11개·두산 8개)가 나왔다. 최종 승자는 두산. 손시헌의 끝내기 안타로 9-8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4차전에서는 다시 배영수의 세이브와 함께 삼성이 8-7로 이겼다. 그렇게 2승 2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운명이 걸린 5차전 역시 접전이었다. 7회 5-5로 승부의 균형을 다시 맞춘 뒤 양 팀 다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한 채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결국 연장 11회말 삼성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면서 뜨거웠던 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 삼성이 극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야구팬들은 최고의 명승부를 보여준 두산과 삼성을 향해 승자와 패자 구분 없는 박수를 보냈다.
#심정수 3안타가 모두 결승포, 잠실 라이벌 제압
'한 지붕 라이벌' LG와 맞붙은 2000년 플레이오프도 명승부였다. 두산은 1993년과 199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모두 LG에 패해 탈락했다. 3년 만에 LG와 다시 만난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설욕을 별렀다. 첫 3경기에서 1승 2패. 다시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4차전에서 간판 타자 심정수의 선제 결승 3점포를 앞세워 2승 2패 균형을 맞췄다. 심정수가 플레이오프 9타수 무안타 부진에 시달리다 처음으로 터트린 안타였다.
두산은 5차전에서 7회까지 0-1로 뒤졌다. 그러나 8회 타이론 우즈의 동점 적시 2루타가 터졌다. 이어 14타수 1안타 부진에 시달리던 심정수가 LG 마무리 투수 장문석을 상대로 좌월 결승 2점포를 쏘아 올렸다.
6차전에서도 두산은 9회초 투아웃까지 3-4로 밀렸다. LG 베테랑 투수 김용수가 무사히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아냈다. 그러나 그때 다시 장문석이 마운드에 올랐다. 안경현이 솔로 홈런을 날려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결국 연장 11회초 다시 심정수가 또 장문석을 상대로 결승 솔로포를 작렬했다. 두산은 5-4로 이겨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심정수는 플레이오프 6경기에서 19타수 3안타(타율 0.158)를 기록했지만, 그 3안타가 모두 결승 홈런이었다. 시리즈 MVP에 올랐다.
#21안타 몰아친 타격전과 니퍼트의 완봉승
'타격의 팀' 두산은 팀 타선의 힘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2008년 삼성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도 엄청난 타격전을 펼쳤다. 장단 21안타를 몰아쳐 역대 포스트시즌 한 팀 최다 안타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두산이 2루타 7개, 삼성이 2루타 3개를 쳐 한 경기 최다 2루타 기록도 곁들였다. 그러나 두산 역시 '무조건 공격' 전술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병살타의 마수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포스트시즌 한 경기에서 한 팀이 병살타 4개를 친 경기가 총 다섯 번 나왔는데, 그 중 4번을 두산(전신 OB 1회 포함)이 기록했다. 다만 그 4경기 가운데 하나인 2007년 한화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병살타 4개를 치고도 8-0으로 승리했다. '병살타 3개 치면 못 이긴다'는 속설도 깨버린 게임이었다.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는 2015년 NC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볼넷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가장 최근에 나온 포스트시즌 완봉승이다. 외국인 투수로는 다니엘 리오스(전 두산), 아퀼리노 로페즈(KIA)에 이어 역대 세 번째였다.
이 승리에는 '1승'이라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준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두산 마운드는 니퍼트가 한 경기를 통째로 책임진 덕분에 천금 같은 휴식을 취했다. 적지에서 열린 1차전에서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정규시즌 3위 두산이 2위 NC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비결이었다. 결국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니퍼트의 호투를 밑바탕 삼아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