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이 화제작으로 떠오르면서 감독 양우석(45)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40대 중반에 데뷔작을 내놓고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화제의 인물.
앞서 실사영화로 제작되다 무산됐던 로보트태권브이 소재 웹툰 '브이'의 스토리 작가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그외 인기웹툰 '스틸레인'을 내놓기고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웹툰 스토리만 썼던 것도 아니다. 로커스라는 CG회사에서 창작기획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그 전에도 여러 회사와 직업을 두루 거쳤다.
알수록 궁금해지는 인물이다. 여러 개의 직함 만큼이나 신상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무엇보다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를 감독의 입을 통해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이 개봉된뒤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고사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가 9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을무렵에야 조용히 인터뷰 테이블로 걸어나왔다.
"민감한 소재 때문에 신중했던거냐"고 물었다. 양우석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럽다"고 답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텐데 왜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문맥보다 프레임 안에 몇 개의 단어를 모은뒤 논란을 만들어내는걸 즐기더라. 이미 우리 영화는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둘러싸여있었다. 혹시나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영화가 상처를 입을까 걱정스러웠다. 한편으로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앞에 나서 얘기하는걸 관객도 안 좋아할것 같았다. 이후 수많은 관객이 우리 영화를 봤고 그만큼 많은 분들이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입을 닫고 있는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게 된 계기는 뭔가.
"고은 시인이 1986년부터 인물 연작시 '만인보'를 쓰고 있지 않나. 그런 엄두는 안 나지만 10명 정도의 주요인물을 통해 역사를 조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무현이란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 5공화국 관련 청문회 때다. 천하를 호령했던 5공화국 실세들의 잘못을 꾸짖고 호령하는 모습이 마치 암행어사 같았다. 당시 고졸 출신 판사에 인권변호사 활동 이력 등 인간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들이 퍼져나왔다. 이후 행보들까지 지켜보며 '저 분을 주인공으로 격동의 80년대를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대통령'이 아닌 '인간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2002년 노무현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됐을때, 구상했던 이야기도 용도폐기했다. 그때 '변호인'을 내놨으면 용비어천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거다. 그리고는 한동안 이 소재를 잊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그 분은 온갖 풍파를 겪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다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건 2년여전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가지면서부터다. 좋은 스펙을 쌓아 취직하는게 인생의 목표가 된 젊은이들을 보면서 '우리 세대가 이런 상황을 만든게 아닌가'라는 자책을 했다. 그러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적 시기였던 80년대를 돌아보며 모든걸 다시 정리해볼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나.
"아니다. 웹툰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변호인'의 제작자인 넥스트의 최재원 대표를 만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최대표께서 영화화 제안을 하시더라. 나는 '그 분이 돌아가셨으니 10년은 지나야할것 같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최대표께서는 '지금 해야된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시작하게 됐고 몇 개월뒤엔 연출까지 맡았다. 이후 송강호 선배가 들어왔고 그 뒤로 모든게 수월하게 진행됐다."
-송강호의 출연이 '변호인'의 성공에 결정타가 된건 사실인듯 하다.
"맞는 말이다. 주변에서 '송강호를 업고 다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업어드릴게요'라고 등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러니 강호 선배께서 '저리 가라'며 거부하시더라.(웃음) '변호인'의 흥행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인것 같다. 하나는 위대한 배우 송강호의 연기, 그리고 송강호가 만든 송우석이란 캐릭터의 매력, 마지막은 송우석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변호인'의 흥행성공과 함께 영화속 캐릭터의 모티프가 된 실제인물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나는 '변호인'에 허구를 가미했고, 분명 '픽션'이라 전제했다. '변호인'을 영화 그 자체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감동받으며 또 깨닫길 바랐기 때문이다. '실제인물'에 대한 신상정보를 파헤치며 또 다른 논란을 만들어내는건 지양해야할 일이다. '변호인'의 주제는 이해와 성찰이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나.
"뭔가 이야기를 풀어낼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렸을때부터 영화광이었던건 사실이다. 많은 책과 영화를 접하며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잘 이용하면 할수 있는 이야기를 확대시킬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관련 업체에서 일도 하게 됐다. 영문학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어 전공으로 택했는데 그러다보니 과학도 궁금해지더라. 하나씩 관심분야를 넓혀나간 케이스다."
-영화감독·웹툰 스토리 작가 등 직함이 한두개가 아니다.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다가 기술 쪽에 관심을 가지면서 CG회사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러다가 실사영화 쪽으로 나오게 된거다. 작가들만 있는 회사도 만들어봤다. 여러가지 일을 거치면서 스토리텔링을 꾸준히 해왔다. 일종의 취미이기도 했다. 영화와 달리 웹툰은 스토리 만드는 사람과 그리는 사람 등 몇 명만 고생을 하면 된다. 앞으로도 굳이 영화감독만 고집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