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선수들이 지난 21일 전지훈련지인 미국 애리조나로 출국했다. 투수 12명과 야수 10명을 포함해 총 22명이 한날한시에 같은 장소로 떠났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2월 1일 이전 단체 스프링캠프를 금지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단체로 캠프를 떠난 것일까.
답은 '개인 훈련'이다. 22명이 모두 애리조나에서 '자율적'으로 개인 훈련을 한다. 스프링캠프를 자체적으로 먼저 시작하는 셈이다. LG 구단이 원래 사용하는 숙소를 단체 할인 가격에 대신 예약해 줬다. 스프링캠프 본진이 도착하기 전날(한국시간 기준 31일)까지 선수들이 자비로 숙박비를 부담한다. 식사를 비롯한 현지 체류비도 선수들이 쓴다. 구단은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 1명만 선수들과 함께 보냈다. LG 관계자는 "객실 숙박비가 1박에 150달러 정도 된다. 2인 1실을 쓰는 선수도 있고, 독실을 쓰는 선수도 있다"며 "지난해 베테랑 선수 몇몇이 훈련지로 미리 떠나 몸을 만들었는데 성과가 좋았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도 같은 결심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선수협은 비활동 기간을 엄격하게 지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스프링캠프 시작일을 2월 1일로 못 박았다. 올해가 2년째다. 일부 베테랑 선수들이나 고액 연봉 선수들이 겨울마다 해외로 삼삼오오 개인 훈련을 떠나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올해의 LG처럼 1군 엔트리 수에 육박하는 규모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같은 비행기에 오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2명 안에는 박용택이나 차우찬 같은 고액 연봉 선수들은 물론이고 연봉이 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젊은 선수들도 여럿 포함돼 있다. LG 관계자는 "올해도 일부 베테랑 선수가 구단에 숙박 예약 신청을 했기에 '다른 선수는 또 없냐'고 물었고, 서로 의사를 묻다 22명이 모이게 됐다"며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들이 적게 받는 선수들과 방을 같이 쓰거나 밥을 사 주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사실 선수 22명이 함께 자비로 개인 훈련을 떠나는 장면은 '강제적인 자율'이 낳은 촌극이나 다름없다. 특히 올해는 더 그렇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KBO 리그 시즌이 중단되면서 정규 시즌 개막일이 3월 24일로 앞당겨졌다. 역대 가장 이른 개막이다. 캠프 기간도 한 달 남짓에 불과하고, 그만큼 시즌을 준비하는 시간이 줄었다. 선수들로선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들은 개인 훈련을 충실하게 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하거나 훈련장을 사용하는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고액 연봉자들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은데, 겨울에 훈련까지 제대로 못하면 시즌 중에는 그 격차가 더 커진다. 추운 한국에서 홀로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리 전지훈련을 시작하는 쪽이 마음 편하다.
KBO 리그 최저 연봉은 여전히 2700만원이다. 1군에서 뛰는 선수는 5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이 역시 큰돈은 아니다. 아직 주전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들이 "차라리 스프링캠프를 빨리 떠나는 편이 몸만들기에는 낫다"고 털어놓은 이유다. 아예 캠프 출국일을 자체적으로 앞당기는 것은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고육지책이다. 팀 캠프지로 먼저 떠나면 왕복 항공료는 구단에서 지원받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대안이다. 하지만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이에 대해 "구단들이 저연봉 선수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스프링캠프 기간이 보름가량 줄어 구단 입장에선 많은 경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대신 그 돈으로 저연봉 선수의 훈련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얘기다. 또 다른 야구계 관계자 역시 "구단이든 선수협이든, 5000만원 이하 연봉 선수에 한해 훈련 비용을 일정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모든 건 선수협이 허가해야 가능한 얘기다.
비활동 기간 준수는 분명히 옳은 일이다. 선수들도 휴식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다만 대안이 없는 강경책은 늘 부작용을 낳는다. 22명의 선수가 함께 개인 훈련을 떠나는 장면이 바로 그 그림자다.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열심히 몸을 만든다"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구단이 할 일이다. 선수협은 부작용을 줄이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저연봉 선수들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게 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