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도의 차세대 '간판'다운 입상 소감이었다. 21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만난 김원진(22·용인대)은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다. 전날까지 사력을 다해 경기를 했던 선수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얼굴 곳곳에 자리 잡은 상처만이 치열했던 경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김원진은 지난 2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남자 유도 60kg급 패자 결승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초 남자 유도의 첫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지만 8강전에서 일본의 시시메 토루(22)에게 패해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났다. 그는 이때까지 대회를 위해 준비했던 오른팔업어치기와 허벅다리걸기는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패자부활전에 나선 김원진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그는 기술과 힘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두 판을 내리잡더니 기어코 동메달을 따냈다.
투혼의 원동력은 근성이다. 오기가 금메달 좌절앞에서 흔들리던 김원진을 다시 뛰게 했다. 그는 "첫 메이저 대회라는 부담감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졌다. 긴장감 탓에 토루가 밭다리 공격을 해올 줄 알고도 당했다"고 떠올렸다. 선수대기실에서 펑펑 울던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금메달 못 땄다고 제 경기가 끝나버리라는 법은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덤비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며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이제 큰 대회에서 더 강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김원진은 남자 유도의 차세대 '간판'이다. 그는 대표팀 내에서 '리틀 김재범'으로 통한다. 체급만 다를 뿐 플레이스타일을 빼다박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특기가 없다. 국가대표 유도 선수 중에 주특기가 없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주특기가 없는 대신 한 박자 빠른 잡기 기술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승부한다. 유도 선수들은 '잡기 싸움이 승부의 70%로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도복깃을 잡지 못하면 아무리 강력한 기술이 있어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잡기 방법까지 김재범과 닮았다. 왼손잡이 김원진은 오른손으로 상대의 깃을 잡고, 왼손으로는 상대의 등쪽을 틀어 쥔다. 등쪽을 잡힌 상대를 허리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을 쓸 수 없다. 이때부터는 상대가 걸릴 때까지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조인철(38) 남자 유도대표팀 감독은 김원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조 감독은 "김원진은 틀어잡는 것부터 강한 체력까지 대표팀 선배 김재범을 닮았다. 남자 유도의 미래를 짊어질 자질이 충분한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