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의 머리카락과 옷에 소변을 본 30대 남성 연극배우가 하급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30대 연극배우 A씨는 2019년 11월 천안시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의자에 앉아 통화하던 B양(18)에게 몰래 다가가 피해자의 머리카락과 입고 있는 후드티와 패딩점퍼 위에 소변을 본 혐의로 기소됐다.
B양은 이어폰을 끼고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고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 피해 당시에는 A씨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B양은 경찰 조사에서 "집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남자가 앞쪽으로 튀어나가 깜짝 놀랐는데, 보니까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 중 봤던 남자였다"며 "집에 가서 옷과 머리카락이 젖어 있고 냄새를 맡아 보니 소변 냄새가 나서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한 일이라 생각해 신고했다. 짜증이 나고 더러워서 혐오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공연을 같이하는 동료와 연기에 관한 말다툼을 해 화가 난 상태에서 소변을 볼 곳을 찾아다니다가 피해자를 보고 홧김에 벌인 일이라고 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A씨의 방뇨 행위로 인해 B양의 성적 자기 결정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이를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 행위에 해당한다면, 행위의 대상이 된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침해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행위 당시에 피해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