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의 가장 큰 변화 중 한 가지는 팀당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3명(NC는 4명)으로 늘어난 점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속을 썩이는 선수들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올해도 그랬다. 선수가 감독에게 해선 안될 '항명' 사건을 일으킨 스캇(전 SK)과 꾀병 논란의 중심에 선 히메네스(롯데)가 대표적이다. 특히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무릎 뼈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는 주장을 했던 것으로 안다. 지난 26일 한 달여 만에 1군에 복귀하기는 했으나, 공교롭게도 웨이버 공시 마감일인 7월24일이 지난 순간부터 수영장과 병원만 오갔다. 전반기에 잘 하던 선수가 돌변하자, 롯데 코칭스태프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들었다.
사실 프로야구에 '태업'을 한다고 의심되는 외국인 선수들은 숱하게 많았다. 나 역시 LG 감독 시절 정규시즌 내내 공 한 개 던지지 않고 연봉만 챙긴 선수를 만나기도 했다. 그때 당한 기억으로 아직도 특정 지역 선수를 보면 걱정이 앞설 때도 있다. 이제 한국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들이 오고 싶어하는 리그가 됐다. 대우도 좋고, 수준도 높다.
하지만 그동안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와 계약을 할 때 지나치게 저자세로 일관했다. 앞으로는 보다 세밀한 옵션 조항을 걸어야 한다. 또한 웨이버 공시 마감 날짜를 뒤로 미루거나, 없애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인성이다. '헝그리 정신'이 없는 선수들은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고 하더라도 자기 몫을 안 한다.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스캇도 그랬다.
- 이번 시즌 히메네스와 스캇 등 태업이 의심되는 선수가 늘어났다. 현장에서 태업하는 외국인 선수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가.
"LG 감독 시절 매니 아이바라는 외국인 투수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그래도 최근 문제가 된 히메네스, 스캇과 울프(이상 SK)는 뛰어보기라도 하지 않았나. 아이바는 정규시즌 내내 볼 한 개도 던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시범경기 내내 시속 150㎞대 강속구를 기가 막히게 던졌다. 그런데 정규시즌 개막을 하루 앞두고 '팔꿈치가 아프다'고 버티더니 1군 마운드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결국 짐 싸서 집에 갔다."
- 연봉은 다 줬는가.
"일 년치 연봉을 다 챙겨간 걸로 기억한다. 정말 희대의 비극이었다. 당연히 구단은 억울하다. '다 못 주겠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 소송도 걸었다는 말도 들렸다. 현장에서 지도자로 있으면서 각종 이유와 스타일로 태업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도루가 장기인데 출루를 안 한다거나.(웃음) 특정 지역에서 온 선수들은 겁이 날 때도 있다. 다른 것보다 의사소통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다 보니 엇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알 것 같다.
"김시진 롯데 감독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낀다.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의사 전달이라도 제대로 되면 좋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참 힘들 것이다. 코칭스태프가 히메네스에게 느끼는 괘씸함이 클 것이다. 내내 잘하다가 웨이버 공시 날짜가 지나자마자 해선 안 될 행동을 했다."
- 반복적으로 불거지는 외국인 태업 문제를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결국 구단이 계약을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하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도 충분히 발전했고 오고 싶어하는 선수도 많다. 그동안 한국은 지나치게 저자세였다. 이제 처음 계약을 할 때부터 주도권을 쥐고 제대로 옵션을 걸고, 세부 조건을 정해야 한다. 싫다고 하면, 다른 선수로 대체하면 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미 계약 자체가 불리한데 코칭스태프와 감독이 컨트롤하기 어렵다. 외국인 선수 연봉상한제도 사라졌다. 돈 줄 것 다 주고 그런 선수를 뽑으면 감독들은 정말 힘겹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입장에서는 웨이버 공시 날짜를 늦추거나 없애는 방안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 7월24일을 정해놓으니 자충수를 두고, 용병에게 끌려다닌다. 외국인 선수 엔트리가 늘었고 앞으로 태업하는 선수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스캇은 빅리그를 경험했다. 하지만 리더인 감독 앞에서 해선 안될 말을 쏟아부었다.
"계약 조건과 함께 인성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성적 위주로 뽑았을 때 나오는 문제다. 선수의 성품이나 태도 등을 따지지 않고 용병을 선택한다. 한국에 오는 외인들은 성적 못지 않게 헝그리 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로티노(넥센)를 봐라. 보통 용병들은 자기를 잘 쓰지 않거나 포지션을 바꾸면 고집을 부리고 태업한다. 하지만 기본 인성이 있다 보니 팀에 자신을 맞출 줄 안다."
- 올 시즌 인성과 성적을 고루 갖춘 외국인 선수를 꼽는다면.
"나바로(삼성)와 테임즈(NC), 필(KIA)다. 히메네스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선수다. 꾸준하게 자기 역할을 하고 팀을 생각하는 옥스프링(롯데)도 있다.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선수가 성적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