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킨 아들의 심성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사격 2관왕에 오른 김청용(17·흥덕고2)은 22일 충북 청주시 가덕면 성요셉공원에 자리한 아버지 산소로 곧바로 향했다. 절을 올린 뒤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술을 뿌렸다. 묘비에 금메달을 걸고, 한참을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김청용은 산소로 향하는 길에 어머니 오세명(46) 씨에게 부탁을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까지 금메달 두 개를 땄으니 한 개는 아버지 곁에 두고 싶다고. 오 씨는 "이번에는 안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딴 전국체전 금메달을 아크릴 판에 넣어 산소 앞에 뒀는데, 햇빛을 많이 받아 변형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산소를 찾아 남편에게 "우리 청용이 잘 부탁해"라고 기도한 오 씨는 착한 아들이 기특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청용은 인터넷상에서 '효자의 아이콘'으로 떴다. 아버지가 사격을 허락한 뒤 곧바로 세상을 떠났고, 당시 14살이던 김청용이 "엄마와 누나는 내가 지킬게. 꼭 호강시켜 드릴게"라고 약속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청용은 지난 추석 가족들과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당시 그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차 스페인에 있었다. 오 씨는 딸 김다정(23) 씨와 함께 산소를 찾았고, 사진을 찍어 휴대폰으로 보내줬다. 김청용은 '잘했네~ 아시안게임에서 꼭 금메달을 딴 뒤 산소로 찾아뵐게'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보름 만에 약속을 지켰다.
청주에서 만난 오 씨는 "남편은 맑을 청(淸)에 얼굴 용(容)을 써서 아들 이름을 지어줬다. 늘 밝은 얼굴을 지니란 뜻이었다. 이름처럼 마음도 맑다"고 말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오 씨는 김청용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 노점에서 떡볶이와 호떡을 판 적이 있다. 오 씨는 "청용이가 친구들에게 창피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엄마 괜찮아요'라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김청용은 "왜 창피해요. 저 떡볶이 좋아해요"라며 "당시 엄마 팔에 붓기가 심했거든요. 설거지거리를 옮기는 일을 도와드렸어요"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4년 전이다. 아버지는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갈비뼈에 금이 갔는데 3시간 만에 하늘로 떠났다. 당시 어머니는 삭발투쟁을 하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병원과 맞서 싸웠다. 이 사연은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오 씨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정말 힘들었다. 우울증에 걸려 1년 정도 외출을 못했다"며 "청용이가 '엄마, 머리카락은 또 기르면 되니 속상해 마'라고 위로해줬다. 누나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김청용의 아버지는 개인택시를 했다. 당시 택시는 번호판을 바꾸지 않은 채 청주 시내를 돌아다닌다. 아시안게임 개막 전 김청용은 운명처럼 아버지가 몰던 택시를 탔다. 김청용은 "가족들과 '흑룡이'를 타고 자주 놀러 갔었어요. 차량이 검정색이라 제 이름을 따서 붙여준 애칭이죠"라며 "가끔 경기하다 실수한 것 같은데 10점이 나올 때가 있어요. 비염도 심한데 사대만 서면 희한하게 멈춰요. 하늘에서 아빠가 도와주나봐요"라고 말했다.
김청용은 "힘들 때면 휴대폰에 저장된 아빠 사진을 봐요. 요즘따라 더 보고 싶어요"라면서도 "하지만 현실에 충실해야 하늘에 계신 아빠가 더 기뻐할 거에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