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5년 차 배우였지만 신인의 마음가짐처럼 주·주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무서워도 해보자!'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거듭 성장을 계속해오고 있는 뜨거운 연기 열정의 소유자였다. '라이더스', '뱀파이어 탐정', '운빨로맨스'까지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낸 이청아는 "일 할 때가 행복하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면서 환하게 웃는 이청아의 모습에서 해피 바이러스가 전해졌다.
이청아는 지난 14일 종영한 '운빨로맨스'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에이전트의 한국 지사장이자 똑 부러지는 알파걸 한설희 역을 맡았다. 첫사랑 류준열(제수호)을 되찾는 과정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쿨한 면모로 안방극장을 물들였다. "쿨한 척하는 건 닮았다. 예전에는 예쁜 척하는 연기를 못해서 감독님들한테 많이 혼났는데 설희를 하면서 되도 안 되는 애교를 하더라. 깜짝 놀랐다. 또 하나의 금기가 깨졌다.(웃음)" 겉모습은 여리디여린 작은 체구로 천상여자란 느낌을 줬지만, 인터뷰 내내 파이팅 넘치는 이청아의 소탈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운빨로맨스'를 마친 소감은.
"아직 실감이 잘 난다. 17회 대본이 나올 것만 같다. 여태까지 했던 드라마랑 다른 느낌이었다. 역할이 지금까지 했던 거랑 다른 인물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고 보통 드라마를 마칠 때 멜로가 완성되거나 사랑이 완성되는 거였는데 드라마 중간에 내 사랑을 보내주고 남의 사랑을 빌어줬다. 착한 일을 한 것 같다. 나 스스로 되게 멋진 여자란 생각이 든다. 뿌듯하다."
-촬영 전 특별히 준비했던 게 있나.
"초조해하면서 들어갔다. '뱀파이어 탐정'을 찍고 바로 다음 날 '운빨로맨스'의 촬영을 시작했다. 원래 준비 시간이 많이 필요한 스타일인데 그게 마음의 시간인 거지 다 가능하더라. 다행히 살을 찌우거나 빼야 하면 못 했을 텐데 살만 좀 찌우고 영어 발음만 영어 선생님과 연습했다. 초반에 제작진의 배려로 준비할 시간을 가졌다. 스타일링이나 이런 점에 신경 썼다."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캐릭터에 도전했다.
"30대 목표가 내가 가진 폭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을 하자는 것이었다. 무서워도 해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운빨로맨스'보다 무서웠던 건 '뱀파이어 탐정'이었다. 짧은 치마에 섹시 뱀파이어 1등 캐릭터라니 처음에 듣고 부들부들 떨었다. 감독님과 제작진은 내게서 그런 매력이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 혼자 있으면 섹시한 면도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해볼까 했다. 대신에 뇌쇄적이고 육감적인 뱀파이어가 아닌 창백하고 나른한 글루미 캐릭터로 소화했다. 드라마 끝날 때 나른함이 섹시하게 보인다고 해주신 시청자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배역의 크든 작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에 황정민 선배가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그때 정민 오빠 동생 역인 구민지 역할을 맡았다. 그때 너무 행복했다. 여태까지 했던 캔디가 아니라 왈가닥이었는데 삶을 헤쳐나가는 적극적인 아이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캐릭터 제약에서 벗어나 행복했고 선배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게 기뻤다. 호시탐탐 그 후로 기회를 노렸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스타일인가.
"스스로 실망한 부분이 있으면 남들이 잘했다고 해도 위로가 안 되더라. 남들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면서 내겐 야박했다. 그래서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희 캐릭터는 모두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설희를 보면서 날 깎아내리는 걸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희를 하면서 가장 그게 큰 선물이었다."
-'뱀파이어 탐정'에서 격렬한 키스신이 있었다.
"심지어 '뱀파이어 탐정'에서 리드하는 신도 있었다. 그냥 나였다면 못 하는 것들이 캐릭터의 힘을 받고 그러니까 소화할 수 있더라. 배우는 그렇게 움직이더라. 강박들이 하나씩 깨지더라. 그랬더니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아졌다. '뱀파이어 탐정'도 그렇고 '운빨로맨스'도 그렇고 안 했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 겁을 내면서 주저할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잡아줬다. 그때 스스로 의심하고 안 하려고 할 때 '해'라고 말했던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제작진이 좋고 대본이 흥미가 있으면 어떤 캐릭터든 신나게 할 것 같다. 운동선수도 해보고 싶고 변호사, 의사도 안 해봐서 해보고 싶다. '뱀파이어 탐정'에서 처음으로 죽나 싶었는데 죽는지, 안 죽는지 애매하게 끝났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다. 진짜 새로운 장르나 새로운 캐릭터면 더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에 하던 건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안 믿어줘서 못 했는데 그건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돌다리 두들기고도 안 건너는 성격인데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 삶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엄마랑 작품 끝나면 뭐해야지' 했던 게 너무 후회됐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바로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