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듯한' 영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에이, 뻔하네' 볼멘소리도 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고 재미있다. 어느 순간 손에 땀을 쥔채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자존심 상하는데?' 싶으면서도 '괜히 봤다'는 생각은 안 들게 만드는 작품. 또 한 편의 케이퍼 무비(절도 관련 범죄 영화) '꾼(장창원 감독)'이 외화가 점령한 11월 스크린에 출격한다.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세워줄 기대작이다. 흥행 환경은 나쁘지 않다. DC '저스티스리그' · 마블 '토르: 라그나로크'· '해피데스데이' 등 외화들이 스크린을 휩쓸고 있지만 이미 한 풀 꺾인 기세다. 볼만한 관객은 다 봤다. 신작을 원하는 관객들이 더 많다. 그 갈증을 '꾼'이 해소해 줄 것으로 보인다.
'꾼'은 현빈·유지태를 중심으로 배성우·박성웅·나나·안세하 등 멀티 캐스팅을 완성했다. 그간 떼주인공물 영화는 많았지만 이번 조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선함을 자랑한다.
올해 1월 개봉한 '공조(김성훈 감독)'를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 흥행 맛을 톡톡히 본 현빈은 '꾼'으로 연타석 홈런을 노린다. '공조' 못지않게 오락성이 짙은데다가 능구렁이 사기꾼으로 변신한 매력은 '꾼'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유지태는 드라마 '매드 독'의 인기를 스크린으로 잇는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가 완벽하게 상반되는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유지태의 바람도 이뤄질 전망이다.
비슷한 캐릭터를 맡아 비슷한 연기를 해도, 늘 배꼽잡고 웃게 만드는 배성우는 '꾼'에서도 남다른 활약상을 펼친다. 박성웅은 그에 비례한 존재감으로 반전 이미지를 뽐낸다. 이번 영화로 스크린 데뷔 신고식을 치르는 나나, 2%의 빈틈까지 완벽하게 채운 안세하의 팀플레이는 긴장과 재미를 동시에 배가시킨다.
기대감을 증명하듯 '꾼'은 개봉 당일 오전 50%에 육박하는 사전 예매율을 기록했다. 외화들을 압도적으로 이긴 수치다. 오프닝 스코어도 21만 명으로 출발이 좋다.
무거운 대작보다 가벼운 오락영화가 흥한 한 해다. 흥행을 보장할만한 공식은 다 갖춘 '꾼'이다. 통쾌한 스토리만큼 시원한 관객몰이에 성공할 수 있을지 '꾼'의 흥행 사냥은 시작됐다.
출연: 현빈·유지태·배성우·박성웅·나나·안세하 감독: 장창원 장르: 범죄·오락·액션 줄거리: 희대의 사기꾼을 잡기 위해 예측불가 팀플레이를 벌이는 이야기 등급·러닝타임: 15세관람가·116분 개봉: 11월 22일
신의 한 수: 결국은 관객을 설득시키는 스토리.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엔딩에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들 만큼 대단한 반전은 없지만 강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한 방이 있다. 관객까지 속여 보겠다는 의지도 가상하다. 속고 속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굉장히 영화적이면서 판타지스럽지만, 작정하고 계획하면 현실에서도 꽤 가능할 것 같은 사기판에 친밀감이 생긴다. 한국과 태국을 오가는 스케일, '정의는 승리한다'는 메시지는 통쾌함의 정점을 찍는다. 빛나는 캐릭터는 역시 배성우. 박성웅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꾸 생각나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다.
신의 악수: '꾼' 이전에 '도둑들(최동훈 감독)'과 '마스터(조의석 감독)'가 있었다. 몇 년 지나지는 않았지만 케이퍼 무비 입문작이 '도둑들'인 세대의 관객에게는 어떤 케이퍼 무비도 아류작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꾼' 역시 마찬가지다. 이병헌이 특별출연해도 무방하지 않을 정도로 '마스터'와 상당부분 스토리가 일치한다. 정·재계, 더 나아가서는 법조계까지. '윗선' 배경 없이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부동산·카지노 등 돈 굴리는 모양새도 결국 비슷하다. 미녀는 꼭 등장하고 어쩔 수 없는 허세도 아쉽지 않게 가득하다. 팝콘 무비로 시간 떼우기는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