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45) LG 감독이 23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시즌 개막 후 18경기, 26일 만이다.
정규시즌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 감독이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다. 쌓이고 쌓였던 스트레스가 성적 부진과 맞물려 자진 사퇴로 이어졌다.
이전에도 김 감독은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몇 차례 밝혔다. LG는 지난해 정규시즌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뒤 대뜸 "제가 지금 관두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빈말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2013년 5월 팀이 부진에 빠졌을 때 구단이 새 감독을 찾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자 크게 상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다. 시즌 초반, 그것도 계약기간 1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나온 새 감독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위의 만류에 마음을 꾹 눌러담은 김기태 감독은 올 시즌에 앞서 또 상처를 입었다. 동고동락하며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군 차명석(45) 투수코치가 팀을 떠나면서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 신장 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차 코치를 재활군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구단은 돌연 차 코치의 사임을 발표했다. 이 문제로 김 감독은 구단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구단에 '이걸 해달라, 저걸 해달라'고 요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키지 않거나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삭인다. 하지만 그것이 누적되면서 감독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LG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감독님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날 찾지, 그게 아니면 연락이나 오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감독이란 게 참 덧없는 것'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그의 속병은 LG가 개막 후 부진에 빠지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오늘 패배는 감독 때문이다." 22일 대구 삼성전이 끝나고 김 감독이 LG 사령탑으로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 말처럼 그는 다 짊어지고 떠났다. LG를 잘 아는 한 야구인은 "김 감독이 자진사퇴를 한 건 맞지만 구단이 자진사퇴를 하게끔 만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