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안컵은 '언더독(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작은 약팀)'들이 유독 눈에 띄는 대회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20일(한국시간)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 16강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토너먼트 8강 진출을 이뤄 냈다. 경고를 적게 받아 얻은 페어플레이 점수로 16강에 턱걸이했던 '언더독' 베트남의 8강 진출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2007년 이 대회에서 거둔 역대 최고 성적과 타이를 기록한 베트남은 오는 24일 일본을 상대로 또 한번의 신화 창조에 도전한다.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21일 열린 두 경기에서 우승 후보들을 상대로 명승부를 보여 준 또 다른 '언더독'들도 인상적이었다. '디펜딩 챔피언' 호주와 연장까지 0-0으로 팽팽히 맞서다가 승부차기에서 무너진 우즈베키스탄, 개최국 아랍에미리트(UAE)와 엎치락뒤치락하며 3-2 펠레스코어 명승부를 보여 준 키르기스스탄 얘기다. 안방에서 열린 2015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호주는 조별리그 때부터 침체된 경기력으로 요르단 등 '언더독'들의 희생양이 됐는데, 16강전에도 답답한 모습을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같은 날 열린 또 다른 우승 후보 일본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했다. 천신만고 끝에 1-0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올랐지만, 두 우승 후보가 보여 준 무기력한 모습은 대회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22일 열린 UAE와 키르기스스탄 경기는 두 팀 모두 몸을 사리지 않는 명승부를 펼쳤다. 연합뉴스 제공
그에 비해 같은 날 마지막에 열린 UAE와 키르기스스탄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전반 14분 UAE가 선제골을 넣고 앞서가자 키르기스스탄이 전반 26분 역습 한 방으로 동점을 만들며 승부를 1-1 원점으로 되돌렸다. 후반 19분 다시 UAE의 골이 터졌으나 키르기스스탄은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추가 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투르수날리 루스타모프가 극적 동점골을 터뜨리며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도 두 팀은 몸을 사리지 않고 서로의 골문을 향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특히 '언더독' 입장에 있는 키르기스스탄은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도 악착같이 뛰며 UAE 수비진을 괴롭혔다. 연장 전반 11분 알리 맙쿠트가 페널티킥을 얻어 냈고, 아흐메드 칼릴이 키커로 나서 성공시키며 UAE가 3-2로 승기를 잡았다. 키르기스스탄은 한 골 뒤진 상황에도 마지막까지 골을 노려 봤으나 바흐티야르 두이쇼베코프의 헤더가 골대에 맞는 등 운이 따르지 않아 아쉬운 패배를 하고 말았다.
이번 대회는 조별리그부터 언더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호주를 잡은 요르단, '동남아 최강' 태국을 거꾸러뜨린 인도에서 시작한 '이변'은 경기 때마다 강팀들을 고전하게 만든 약팀들의 분전으로 이어졌다. 키르기스스탄이 보여 준 저력 역시 '언더독'의 무서움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8강 대진표는 베트남을 제외하면 대체로 강팀들로 꾸려져 예상대로 흘러갔으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언더독'들의 약진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우승 후보들의 부진 속에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아시안컵을 살려 낸 일등공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