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항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지면서 시작된 '오너 갑질' 파문이 국내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가 수행 비서에게 갑질을 했다는 폭로가 나온 데 이어 유명 스타트업 셀레브의 대표가 평소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아 왔다는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갑질 고발에 기업들은 성폭력으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기업 총수 일가를 향한 '갑질 미투 운동'으로 확산되진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현민이 쏘아 올린 오너 갑질 미투
22일 재계에 따르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이후 재벌 갑질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가운데 다른 기업들에서도 갑질이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의 갑질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 19일 JTBC 뉴스룸에 따르면 이 대표의 전직 수행 비서였던 A씨는 "직원이 아니라 하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직원인 수행 비서로 입사했지만 회사가 아닌 이 대표 집으로 출근했고, (거동이 불편해서) 취침 때 화장실에 가기 힘드니까 요강처럼 쓰는 바가지를 비우고 씻는 일까지 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또 A씨는 "비서 대기실에 이 대표가 벨을 누르면 번호가 뜨는 모니터가 있었다"면서 "직원마다 번호가 있어서 벨이 울리면 들어가서 하나씩 다 해 줘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 대표가 불법적인 지시를 할 때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대표가 "예전 왕과 똑같았다"면서 "(운전할 때는) '넌 왜 개념 없이 불법 유턴을 하지 않냐'고 혼내면서 욕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갑질 폭로가 나오자 이 대표는 곧바로 "부적절한 처신으로 고통을 느끼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오너 갑질 고발을 촉발한 대한항공 역시 잇따른 갑질 고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조 전무에 대한 갑질 폭로를 시작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그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의혹이 연일 불거지고 있다.
폭로를 살펴보면 단순 오너 일가의 막말·갑질을 넘어 탈세 등 심각한 범죄행위도 포함돼 있다.
스타트업도 오너 갑질
오너 갑질 논란은 비단 재계 총수 일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스타트업 기업인 셀레브에서도 오너의 갑질이 있었다는 제보가 나왔다.
셀레브는 2016년 매거진 편집장 출신인 임상훈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현재 구독자 11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일 셀레브를 퇴사한 한 직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 대표의 지시로 하루에 14시간 일했고,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갑질을 당했다'면서 '임 대표는 직원들의 뺨을 때리고 단체로 룸살롱에 갈 때는 여직원들도 동석시키고 접대부를 고르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그는 '회식 때는 컨디션과 상관없이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셔야 했고 얼음을 던져 직원의 입술을 터뜨린 날도 있다'고 임 대표의 폭력적인 경영 방식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고 토로했다. 이 직원은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현재 퇴사한 상태다.
퇴사한 한 직원의 고백 이후 "임 대표의 갑질이 끊이지 않았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셀레브의 또 다른 직원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적인 업무 환경을 감당해야 했다"면서 "성과에 따라 해고될 수도 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자, 임 대표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셀레브 대표직을 사임한다'는 글을 올렸다.
기업 오너에 대한 갑질 폭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재계 안팎에선 이들을 견제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오너들의 갑질은 비뚤어진 특권 의식과 서열주의 문화에서 비롯됐다"면서 "잘못한 뒤에도 경영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족벌경영' 시스템 역시 주요 원인인 만큼 기업소유지배구조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잇따른 갑질 논란에 주요 기업과 총수 일가들은 만에 하나 모를 갑질 폭로가 나오진 않을지 내부 단속에 들어간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를 포함해 최고 경영진 등이 임원 회의 및 임직원 전달 사항을 통해 사소한 스캔들,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당부한 상태"라며 "성폭력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자칫 기업 갑질 미투 운동으로 번지진 않을지 우려하는 눈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