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스포츠가 난리가 났다. '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 대학에서는 "체육특기생 100명 이상의 졸업이 취소될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지난해 본격화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은 지난해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이 촉매 역할을 했다. 정유라는 2014년 승마특기생으로 이화여대 체육과학부에 입학했고, 지난해 11월 18일 졸업이 취소됐다. 부정 입학뿐 아니라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으면서 학점을 받은 부실한 학사 관리가 드러났다. 정유라 자신은 "학교는 딱 한 번 갔다"고 말했다.
정유라 파문은 대학 스포츠 전체로 확산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체육특기생 젼형을 채택하고 있는 대학의 학사 관리 실태 점검을 진행 중이다. 체육특기생이 100명 이상 재학 중인 전국 17개 대학은 교육부 관계자가 직접 현장에 나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1차적으로 부산 동의대의 점검이 최근 완료됐다.
박성수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과장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2월 말까지 점검이 예정돼 있다. 관계자 4~5명이 대학에 직접 가서 면밀히 보고 있다"며 "학교마다 점검 날짜가 정해져 있어 큰 문제만 없다면 2월까지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체육특기생 100명 이하 대학 80여 곳은 학교에 자체 조사를 지시해 서면 보고를 요구했다. 이번 실태 점검 대상인 체육특기생은 7600여 명이다. 사실상 전수조사다.
이례적인 일이다. 박 과장은 "최근 20년 내에 전수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통상 대학들은 종합 감사 때 학사 및 교무 행정 등을 점검받았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이다. 역시 승마특기생이었던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의 연세대 재학 시절 학사 관리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5~14일 연세대 학사 관련 현장 점검을 실시해 학칙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1998년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한 장시호는 재학 중 3회 학사 경고로 당시 학칙상 제적 대상이었지만 2003년 8월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시호뿐만이 아니었다. 제적 대상임에도 졸업한 체육특기생은 115명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10회 이상 학사 경고를 받고도 졸업한 체육특기생이 있었다. 점검 당시 연세대 주위에선 "100명 넘게 졸업이 취소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교육부는 법률 자문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115명의 학위 취소는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이번 전수조사는 12월 연세대 현장 점검의 연장 선상이다. 해당 대학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체육특기생이 수강한 과목을 담당한 교수들은 근거 자료를 준비하느라 연말연시를 보내야 했다. 연세대 사례에서 보듯 그동안 체육특기생 학사 관리가 엄정했을 리 만무했다.
A대학 체육학과 교수는 "과거 한 대학에서 교양과목 교수가 체육특기생에게 F학점을 줬다. 하지만 교무회의에서 C학점으로 변경했다. 해당 특기생이 국가대표 선수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B대학 교수는 "과거에 비해서는 학사 관리가 엄격해진 편이다. 하지만 지금도 문제가 있다. 교양과목은 몰라도 전공과목의 경우 '원칙대로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체육특기생 제도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 10월 5일 교육법 시행령 제정에 따라 시행됐다. 당시엔 대학 입시 성적과 관계없이 입학이 허용됐고, 체육 분야 5년 복무로 병역을 대체하는 특례까지 주어졌다. 국가가 스포츠를 주도했고, 스포츠를 '국위 선양'의 도구로 본 시절이었다. 그래서 '전문 체육인'을 양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이른바 '운동기계'가 양산됐다. 고등학교 입시에도 특기생 제도를 도입해 중학 시절부터 '선수는 운동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부작용이 따랐다. 특기생들의 학력 저하와 사회 부적응이 문제가 됐다. '국가 주도 스포츠'라는 이념도 퇴색됐다. 체육특기생 제도 개선 방안은 1980년대 말부터 마련됐고, 지금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스포츠 단체가 통합된 상태다.
하지만 체육특기생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스포츠 제도가 학업을 외면한다는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해 12월 연세대 점검에서 대상이 된 체육특기생은 1996~2012년에 입학한 685명이다. 이 중 16.8%가 학칙을 위반하고 졸업했다. 실태 점검을 받고 있는 대학교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 이유다. 그동안 '관행'으로 했던 일들이 징계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초 소문처럼 대규모로 졸업이 취소되는 사태는 없을 전망이다. 교육부 박 과장은 "이번 실태 점검의 1차 목표는 체육특기생 학사 관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며 "체육특기생에게 어느 정도의 학습을 요구해야 하는지는 체육계와 대학이 추후 논의를 거쳐 개선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부터 20년 동안 체육특기생의 학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점검을 받고 있는 대학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부산 지역 C대학 교수는 "한 개 학교가 점검이 끝나면 다음은 더욱 엄격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교육부는 학교 교칙에 맞게 학사 관리가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후 어떤 지침이 내려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문제가 있는 학교는 징계와 함께 시정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한 번은 체육특기생들의 학사 관리가 정비돼야 한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수도권 D대학 교수는 "학점 관리가 꼼꼼해지면 체육특기생들이 학점 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교양과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학교 지도 아래 학칙에 따라서 이뤄진 부분은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크게 일탈을 했거나 점검에 앞서 없던 서류를 만들어 위·변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상당한 운동선수가 미휴학 상태에서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출석을 인정한 경우도 있었다. 상식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주장과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대학에서 융통성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대학 운동부 축소 흐름을 가속화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학들은 정원 감축 등 구조 개혁 압박을 받고 있다. 주요 인기 종목이 프로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대학에서 운동부를 유지할 유인은 낮다. 한양대가 2015년부터 체조·육상·유도 등 종목별 특기생을 받지 않았고, 2009년에는 건국대가 야구·축구·농구부를 폐지하려 했다 철회한 적이 있다. A대학 교수는 "대학 구조조정에서 1순위로 꼽히는 게 운동부다. 대학 평가에 반영이 되지 않는데 연간 수십억원 예산을 부담할 학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