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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롤모델이었던 '전설' 베켄바워 별세…슬픔에 빠진 축구계 '애도 물결'

독일의 축구 영웅이자 황제(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축구 역사에 남을 업적과 우승을 이끈 ‘레전드’이자,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롤모델로 삼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레전드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전 세계 축구계도 슬픔에 빠졌다.베켄바워의 유족은 지난 8일(현지시간) dpa통신을 통해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전날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다. 향년 78세.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독일 키커, 빌트 등 현지 매체들은 독일 축구의 영웅이 세상을 떠난 소식을 대서특필하며 관련 소식을 잇따라 전했다. 키커는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닌 빛나는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서 독일 축구와 바이에른 뮌헨의 성공을 이끈 인물이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나 13살 때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 입단한 그는 1964년 프로에 데뷔한 뒤 무려 14시즌 동안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이 과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네 차례나 독일 분데스리가 정상으로 이끌었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의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이같은 활약에 그는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 수식어가 붙었다.1977년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새 도전을 택한 그는 미국 코스모스 뉴욕에서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뛰었고, 1980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함부르크SV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떠나 1983년 뉴욕 코스모스에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클럽팀 소속으로 경험한 우승만 무려 18차례나 된다.비단 클럽에서만 빛난 건 아니었다. 1965년부터 서독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13년 간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었다. 특히 1972년엔 서독의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1972) 우승, 197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 등을 이끄는 등 독일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선수 시절 이같은 활약 덕분에 그는 축구 선수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발롱도르를 1972년과 1976년 두 차례나 품었다.특히 선수 시절 그는 탁월한 실력과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축구 수비 전술에 변혁을 이끈 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리베로, 스위퍼 역할을 맡아 직접 공격에 가담하는 플레이로 찬사를 받았다. 수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최후방에서부터 직접 드리블로 공격에 가담하거나, 과감한 전진 패스 등을 통해 공격의 중심에 섰다. 수비의 마지막이자 공격의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도 “리베로 포지션에 대한 베켄바워의 해석은 축구를 변화시켰다”고 극찬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로서도 성공의 길을 걸었다. 서독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1990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주장으로서, 또 감독으로서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올림피크 마르세유(프랑스)의 프랑스 리그1 우승에 이어 친정팀 바이에른 뮌헨 지휘봉까지 잡아 1993~9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995~96시즌 UEFA컵(현 UEFA 유로파리그) 정상으로 팀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한 뒤 2002년까지 회장으로서 바이에른 뮌헨 구단을 이끌었고, 2002년부터는 명예회장을 지내는 등 행정가로서도 박수를 받았다.워낙 세계 축구의 레전드다 보니 국적을 가리지 않고 많은 선수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핵심인 ‘괴물 수비수’ 김민재도 바이에른 뮌헨 입단 당시 베켄바워와 브라질 출신 수비수 루시우를 자신에게 영감을 준 선수로 꼽았다. 당시 김민재는 “베켄바워는 뛰어난 수비수면서 전진 능력까지 갖췄다. 오랫동안 최고 수준에서 뛰었고, 바이에른 뮌헨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나 역시 이곳에서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며 “베켄바워는 내가 존경해 온 인물이었다. 영상으로 보면서 롤모델로 삼았다. 닮고 싶은 레전드이기도 하다”고 했다.레전드의 안타까운 소식에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계의 애도 물결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흐름이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성명을 통해 “독일과 세계 축구의 전설인 베켄바워는 역사에 남을 업적과 우승을 이뤄냈다. 그런데도 늘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을 유지했다. ‘카이저’는 위대한 사람이자 축구의 친구이며, 진정한 전설이었다”고 했다.알렉산더 체페린 UEFA 회장도 “베켄바워가 수비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펼쳤던 완벽한 볼 컨트롤, 선구자적인 스타일은 축구 자체를 바꿔버렸다. 진정한 전설에 작별을 고한다”고 했다. 프랑스의 전설인 미셸 플라티니도 “베켄바워는 펠레와 요한 크루이프, 바비 찰턴 같이 나를 축구에 입문하게 해 준 오랜 동반자였다. 독일 축구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를 바꾼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바이에른 뮌헨 구단도 “베켄바워라는 비교할 수 없는 ‘카이저’를 잃고 애도하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바이에른 뮌헨은 지금 같은 구단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카이저는 영원하다”며 선수 시절 그의 사진을 게재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물론 전 세계 축구 팬들도 댓글 등을 통해 레전드와 안타까운 마지막 작별 인사를 이어가고 있다.김명석 기자 2024.01.0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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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부터 1281골까지...'축구의 역사' 펠레가 남긴 기록들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82)가 30일(한국시간)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펠레는 축구 역사의 상징으로 통한다. 각종 기록이 그에 의해 쓰였고, 20세기부터 최근까지도 축구의 상징으로 남녀노소가 펠레를 꼽을 정도로 뛰어난 기록들을 남겼던 스타다. 현대 축구의 역사에서 펠레의 영향력도 그만큼 컸다. 대표적인 게 등 번호 10번이다. 펠레가 브라질 축구대표팀에서 뛰면서 사용한 10번은 이제 어느 팀이든 그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 번호가 됐다.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10번은 에이스 네이마르다. 영국 더선은 펠레가 이 번호를 우연히 달게 됐다고 전했다. 펠레는 "1958년 월드컵에서 내게 10번이 주어졌다. 10번 유니폼을 입는 게 누구에게도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고, 내가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입게 됐다"고 했다. 펠레는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 3회를 경험한 인물이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첫 우승에 기여한 그는 1962년 칠레 대회에서 팀의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정상에 섰다. 마지막 우승인 멕시코 월드컵에선 6개의 도움을 기록해 단일 월드컵 최다 도움 기록을 썼다. 월드컵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도 펠레다. 1958년 첫 우승 당시 그는 17세 249일에 불과했다. A매치 득점 기록은 아직도 브라질 대표팀 역대 1위 자리에 올라있다. A대표팀에서 총 92경기를 뛴 그는 77골을 기록했다. 현재 펠레의 후계자로 올라있는 네이마르가 2022 카타르 대회를 통해 통산 A매치 77골을 기록, 펠레와 타이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1956년부터 1974년까지 브라질 1부리그 소속의 브라질 산투스에서 뛴 펠레는 소속팀에서도 총 6번의 우승(1961~1965년, 1968년)을 경험했다. 1959년에는 1년 동안 무려 127골을 기록했다. 이는 클럽팀에서 1년간 한 선수가 기록한 최다 득점 공인 기록이다. 그는 산투스에서 659경기에 출전해 643골을 넣었는데, 리오넬 메시가 FC바르셀로나에서 672골을 넣기 전까지 단일 클럽 최다 골로 남아있었다. 펠레가 남긴 골의 합계는 총 1281개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대표팀과 클럽팀 공식전에서 넣은 득점은 757골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 축구협회와 펠레, 그리고 전 소속팀 산투스는 그가 총 1283골을 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선 경기와 투어 경기도 포함한 주장인데, 오래된 탓에 정확성이 떨어져 이를 두고 이견이 있다. FIFA는 그의 공식 득점 기록을 1366경기 1281골로 집계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2.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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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음바페가 써 내려가는 월드컵과 프랑스 축구 역사

프랑스 축구대표팀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24)가 최연소로 월드컵 '전설' 반열에 올랐다. 음바페는 5일 카타르 도하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폴란드와 16강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해 3-1 승리를 이끌었다. 음바페는 이날 폴란드전을 통해 '축구황제' 펠레(브라질)의 기록까지 넘어섰다. 펠레는 종전 24세 이전에 월드컵에서 7골(1958년 스웨덴 대회 6골, 1962년 칠레 대회 1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였다. 음바페는 프랑스가 우승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4골(영플레이어상)을 넣었고, 이번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3골을 넣어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어 5일 폴란드와 16강전에서 두 골을 추가, 만 24세가 되기 전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9골)을 넣은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음바페는 지난 27일 D조 덴마크와의 2차전에서 후반 16분 선제골과 41분 결승골을 터뜨려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를 통해 프랑스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30골을 돌파한 선수가 됐다. 폴란드전을 포함한 A매치 통산 성적은 63경기서 33골. 이미 A매치 108경기에서 31골을 기록한 프랑스의 ‘전설’ 지네딘 지단을 넘어섰다. 프랑스 대표팀 개인 최다골은 올리비에 지루가 갖고 있는 52골(117경기). 나이와 기량을 고려하면 음바페가 충분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4년 전보다 더 성장한 음바페는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 무대에서 득점왕(골든부츠)에 도전한다. 앞서 조별리그에서 3골을 기록한 음바페는 이번 대회에서 총 5골을 넣으면서 대회 득점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지루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마커스 래시퍼드(잉글랜드), 알바로 모라타(스페인), 에네르 발렌시아(에콰도르), 코디 학포(네덜란드·이상 3골) 등 2위 그룹과 격차를 2골 차로 벌렸다. 지난 대회 골든부츠의 주인공을 6골을 넣은 해리 케인(잉글랜드)이었다. 독일 축구통계전문매체 트란스퍼마르크트가 책정한 카타르 월드컵 출전 선수 중 몸값 1위는 1억6000만 유로의 음바페다. 우리 돈으로 2186억원이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에 몸담고 있는 음바페는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등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있다. 그는 월드컵 무대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며 실력과 몸값을 입증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2022.12.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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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한국 축구의 친구, 아르헨티나

대한민국, 이탈리아, 스페인, 파키스탄, 멕시코, 캐나다, 아르헨티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 나라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깝지 않다. 특별히 이들 간의 교역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들은 커피 클럽 멤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커피를 사랑해서 이들이 뭉친 것은 아니다. 유엔(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는 P5라고 불리는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이 있다. 비상임이사국은 2년의 임기로 대륙안배를 고려해 선출된다.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15개국 중 9개국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P5 모두가 찬성해야 한다. 즉 P5 중에 한 나라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상임이사국에 진입하려는 이들이 있다. 바로 G4라고 불리는 브라질, 독일, 인도, 일본이다. 4개국은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 커피 클럽은 G4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로 뭉친 그룹이다. 한국은 일본을 반대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독일, 파키스탄은 인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는 브라질을 반대한다. 캐나다는 상임이사국 확대에 반대한다. 1990년대 초반 유엔에서 이탈리아의 주도로 이집트, 파키스탄, 멕시코가 모여 상임이사국 확대에 반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1998년 결성된 커피 클럽에 한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이 참여하며 세력이 커졌다. 커피 클럽이란 별칭은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하는 비공식 모임’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합의를 위한 연합(UfC·Uniting for Consensus)’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남미 대륙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문화권을 각각 대표한다.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대륙의 63%에 이른다. 이 둘은 오랜 지역 라이벌이기도 하다. 19세기 초반 우루과이가 브라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일 당시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 편을 들면서 브라질과 전쟁을 했던 악연도 있다. 하지만 1840년대 국력이 상승 중인 내륙국 파라과이가 항구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은 삼국동맹을 맺고 이에 대항했다. 2세기가 넘는 동안 두 나라는 전쟁과 경쟁에서 시작해 우정과 동맹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이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중남미 지역 세력 균형에 변화가 불가피하고 이에 따른 불안정을 이유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반대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여러 분야에서 경쟁했다. 두 나라가 아직도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는 스포츠다.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두 나라는 대립하지만, 이들이 가장 치열하게 부닥치는 종목은 단연 축구다. 친선경기마저도 첨예하게 경쟁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미국의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축구 국가 라이벌이라 칭하기도 했다. 1914년 두 팀이 첫 경기를 벌인 이후 이들은 2021년 11월 기준으로 109번 맞붙었다. 아르헨티나가 40승, 브라질이 43승을 거둔 가운데 무승부는 26번 나왔다. 두 팀이 기록한 골도 아르헨티나(163개), 브라질(165개)로 팽팽히 맞선다. 1946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결승에서 만난 두 나라는 대형사고를 쳤다. 경기 중 브라질의 핀토가 아르헨티나의 주장 살로몬의 경골과 비골을 골절시키자 두 팀은 난투극을 벌였고, 관중은 경기장에 난입했다. 중단됐던 경기는 질서가 회복된 후 계속되었고 아르헨티나의 2-0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 경기의 후유증으로 두 나라는 그 후 10년 동안 경기를 갖지 않았다. 한편 2014 월드컵을 개최한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독일을 만나 1-7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대패한다. 결국 결승전에 아르헨티나와 독일이 올라가자, 브라질은 좌불안석이 된다. 아르헨티나가 자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모습을 브라질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홈 팬들은 독일을 간절히 응원했고, 결국 우승은 독일이 차지했다. 1998년까지 월드컵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만을 번갈아 가면서 개최되었다. 이에 2002년에는 다른 곳에서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경제 강국이었던 일본이 선수를 치고 나갔다.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 한국은 일본의 월드컵 유치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에 한국도 월드컵 유치를 선언한다. 초반에는 일본이 앞서 나갔다.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다. 전통적으로 일본과 친했던 브라질은 축구황제 펠레까지 가세했다. 또한 1966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잉글랜드의 보비 찰튼도 일본의 공식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자 아벨란제 회장의 전횡에 맞서 FIFA를 개혁하고 싶었던 UEFA(유럽축구연맹) 회장 레나르트 요한손이 한국편에 선다. 브라질과 앙숙인 아르헨티나도 한국 지지를 선언했다. 1995년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과 디에고 마라도나는 방한해 한국의 월드컵 유치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마라도나가 한국을, 펠레가 일본을 위해 뛰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남미는 한국(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페루)과 일본(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파라과이)을 지지하는 나라들로 양분됐다. 이렇게 전 세계 축구계가 갈라지자 2002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공동 개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는 유엔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2019년 아르헨티나의 주요 언론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단독 표기해 주목받았다. 2021년 상원은 매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들이 한국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긴밀히 협력하는 브라질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울 뿐이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역시 “적의 적은 친구다”. 2002 월드컵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돼 일본에서 조별 경기를 갖는다. 당시 일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잉글랜드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찬밥 취급을 받았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앙숙인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석연찮은 페널티 킥 판정 때문에 0-1로 패했고, 스웨덴과 1-1로 비기며 16강 진출에 실패한다. 경제위기에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잠깐이라도 꿈을 주고 싶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통곡했다.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불렸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도 눈물을 훔쳤다.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2022년은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국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의 라스트 댄스가 보고 싶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에 행운이 따르길 기도한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9.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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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송판 격하하는 축구황제 안정환!

방송인 안정환, 이이경이 1일 오전 온라인으로 열리는 티캐스트 E채널의 ‘용감한 형사들’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사진=티캐스트 제공2022.04.01 2022.04.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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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황제' 펠레, 대장 종양 치료 위해 다시 입원

‘축구 황제’ 펠레(81·브라질)가 대장 종양 수술 후 3개월 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더 선 등 외신들은 “펠레가 대장 종양 추가 치료를 위해 상파울루 시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다. 병원 측은 펠레가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펠레는 쇠약해진 모습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펠레는 지난 8월말 대장에서 종양이 발견돼 9월초 수술을 받았다. 앞서 고관절 수술, 전립선 요도 절제 수술 등을 받아 현재 휠체어에 의존해 지내고 있다. 펠레는 브라질 국가대표로 월드컵을 3차례(1958년·1962년·1970년) 제패했다. 비공식 경기 포함하면 1283골이나 넣은 레전드다. 박린 기자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1.12.0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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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제거 수술받은 펠레 "90분 뛰고 추가시간도 뛸 수 있어"

대장 종양 수술을 받은 '축구황제' 펠레(81·브라질)가 "90분에 추가시간까지 뛸 준비가 됐다"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전했다.AP통신은 15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의 성명을 인용해 "펠레가 중환자실을 나와서 일반 병실에서 회복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10월에 여든 한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펠레는 2015년 고관절 수술을 받았고, 최근엔 정기 검진에서 대장 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펠레는 수술이 끝나고 회복중이었던 지난 9일 젊은 시절 사진을 올리며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일반 병실로 이동한 펠레는 이번에도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걱정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펠레는 "이 메시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내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려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시간을 내준 여러분께 정말 감사하다. 모두 사랑한다"며 "방금 중환자실을 떠나 일반 병실로 옮겼다. 지금이라도 90분에 추가시간까지 뛸 수 있을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김효경 기자 2021.09.1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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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귀환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화색··· 英 매체 “사인 유니폼 요청”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포르투갈) 사인 유니폼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뜨거웠던 여름 이적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호날두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복귀였다. 지난 1일(한국시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호날두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됐다. BBC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맨유는 이탈리아 세리에A 유벤투스에 1280만 파운드(약 205억원)에 해당하는 이적료를 지불했다. 연봉을 비롯한 기타 세부 사항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날두는 12년 만에 EPL에 복귀했다. 2009년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8000만 파운드(약 1272억원)를 받고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던 호날두는 최대 3년 동안 다시 붉은 유니폼을 입게 됐다. 호날두는 맨유에서 6시즌을 뛰면서 292경기에 출전해 118득점을 기록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경험하는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세계적인 공격수로 거듭났다. 호날두의 복귀에 축구계는 들썩였다. ‘축구황제’ 펠레는 호날두의 소셜미디어(SNS)에 “항상 행복해라”라고 댓글을 남겼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은 “호날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다. 그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반가워했다. 영국 ‘익스프레스’는 “맨유 팬들과 마찬가지로 맨유 선수단이 호날두 등장에 기뻐하고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호날두는 1일 공개된 맨유와 진행한 이적 후 첫 공식 인터뷰에서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딱 들어맞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다시 계속해서 역사를 만들고 싶다”며 들뜬 마음을 전했다. 이어 “팬들은 핵심이고 (그런 그들이 경기장에 돌아와) 기쁘다. 맨유 팬들은 특히 더 특별하다. 맨유 팬들이 아직도 나를 연호해준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게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준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호날두의 EPL 복귀를 반기는 사람이 또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다. 영국 ‘스포츠바이블’과 ‘익스프레스’는 2일 “호날두가 유벤투스에서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로 돌아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호날두의 이니셜이 새겨진 맨유 유니폼 80벌을 주문했다”고 알렸다. 매체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실 직원들에게 선물용으로 주기 위해 주문제작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80개의 유니폼 중 엘리자베스 여왕은 호날두의 첫 번째 유니폼을 ‘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이 받을 첫 번째 유니폼에 호날두의 사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들은 “오래전부터 유명 인사들을 많이 만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누군가에게 사인 요청을 한 적이 없었다. 호날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인을 요청받은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고 들뜬 모습을 보였다. 한편 호날두는 2일 포르투갈 알가르브의 이스타디우 알가르브에서 열린 아일랜드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예선 A조 4차전 홈경기에 출전해 멀티 골을 연달아 터트리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후반 44분 이후 두 골을 연이어 성공하며 경기 막판 대역전극을 만들었다. 호날두는 개인 통산 A매치 111골을 넣음으로써 이란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알리 다에이의 A매치 109골을 넘어 역대 최다 신기록을 작성했다. 김영서 인턴기자 2021.09.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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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가 저물다, 음바페가 떠오르다

지금 이 시대를 상징할 수 있는 경기가 펼쳐졌다. 축구황제의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터졌다. 17일 오전(한국시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에서 2020~21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16강 1차전 바르셀로나(스페인)와 파리 생제르맹(프랑스·PSG)의 경기가 펼쳐졌다. 세계가 주목한 경기였다. '현존하는 황제'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바르셀로나와 '미래의 황제' 킬리안 음바페가 존재하는 PSG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음바페의 완벽한 승리였다. 메시는 전반 27분 페널티킥 선제골이 전부였다. 음바페는 전반 32분 동점골을 넣은 뒤 후반 20분 역전골을 터뜨렸고, 후반 40분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팀의 4-1 대승을 책임졌다.이번 경기를 통해 음바페가 차세대 황제로 모자람이 없음을 증명했다. 메시 앞에서 해트트릭을 쏘아올렸다. 그것도 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황제의 왕관이 음바페의 머리로 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럽축구 통계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은 음바페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줬다. 메시는 7점에 그쳤다.언젠가 이런 시기가 올 것이 예상됐다. 음바페는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를 이을 차세대 축구 황제 1순위로 꼽혔다. 20세의 어린 나이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며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8년 발롱도르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그는 아직도 23세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음바페는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다. 음바페가 PSG를 떠나 이적한다면 세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가 나올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2017년 바르셀로나를 떠나 PSG로 이적할 때 네이마르(28)가 기록한 2억2200만 유로(2976억원)다.스위스의 리서치그룹 'CIES 풋볼 옵저버토리(CIES Football Observatory)'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바페의 몸값은 2억5000만 유로(3351억원)로 나타났다.독일의 통계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크트'의 평가도 역시 1위다. 이 매체는 음바페의 몸값을 1억8000만 유로(2413억원)로 책정했다. 34세 노장이 된 메시는 저물고 있다. 그러자 음바페가 거침없이 떠오르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최용재 기자 2021.02.1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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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하늘에서 같이 축구를" 메시 "마라도나는 영원할 것"

“전설이여 안녕. 오늘은 아르헨티나 국민과 축구계에 매우 슬픈날이다. 그는 우리를 떠나지만 떠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디에고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FC바르셀로나 공격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25일 트위터에 디에고 마라도나 사진을 올리며 하늘나라로 떠난 전설을 애도했다.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마라도나는 현지시간 25일 60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메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마라도나 전 감독과 사제지간이었다. 마법같은 플레이가 닮아 ‘리틀 마라도나’라 불리기도했다. 마라도나와 함께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축구황제’ 펠레(브라질)도 로이터통신을 통해 “난 위대한 친구를 잃었다.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찰 것”이라고 밝혔다. 게리 리네커(잉글랜드)는 “우리세대 최고의 선수이자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다. 축복과 어려움이 함께했던 삶 이후 신의 손 안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리네커는 ‘마라도나 신의 손’이라 불리는 1986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을 함께 뛴 바 있다. 당시 마라도나 손에 맞고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고 득점이 인정됐다. 유벤투스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도 소셜미디어에 마라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오늘 난 친구와 작별했고, 세계는 영원한 친구와 작별했다. 그는 너무 일찍 떠났지만 무한한 유산과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겼다. 당신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한국축구 미래 이강인(발렌시아)도 인스타그램에 마라도나 사진과 함께 ‘RIP(Rest In Peace(편히 잠들기를)’란 글을 남겼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는 등 전세계가 슬픔에 빠졌다. 한편 마라도나는 현지시간 25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현지 언론들은 이날 오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뇌 수술 후 11일 퇴원해 회복 중이었으나, 이날 세상을 떠났다. 마라도나는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었고,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0.11.2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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