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 김병현은 앳띤 얼굴이다. 그러나 외모와 달리 고집은 고래심줄이다.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었던 지난 달 말 미네소타전서 "아프다"며 감독의 등판 지시를 거부한 것도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불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몇 번 있다.
애리조나 시절인 2002년 7월29일. 김병현이 밥 브렌리 감독에게 "오늘 던지기 싫다"고 말해 덕아웃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날 샌디에이고전 세이브 찬스에서 마무리인 자신을 내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항명.
그날 김병현은 불펜에서 제3자처럼 느긋하게 경기를 봤다. 동료들의 비난도 개의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2001년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배리 본즈 타석 때 브렌리 감독이 김병현을 교체하러 마운드에 올라갔다. 김병현은 뒷걸음질치며 공을 주지 않았다.
랜디 존슨, 커트 실링에게도 당하지 않았던 수모에 감독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했다. 김병현도 투수 교체가 감독의 고유권한이란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본즈에게 그동안 안타 하나 맞지 않았기에 납득할 수 없어 숨바꼭질을 했던 것이다. 결국 2003년 브렌리와 헤어졌다.
이렇듯 김병현의 돌출행동에는 그 때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생활 10년째이지만 김병현의 이런 행동에는 뭔가가 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일줄 모르는 자신감이 바로 그것이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 오른 한국 선수들 가운데 키가 가장 작다. 180㎝도 안된다. 그런데도 '정글'에서 살아 남았다. 독특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이상한 슬라이더'(프리스비 슬라이더)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하드웨어일뿐이다. 뭐니뭐니해도 원동력은 두둑한 배짱이다. 때론 그것은 자만심이 돼 된통 당하기도 했다. 2001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가 그것이다.
4차전에 두들겨 맞고 5차전에 자원 등판해 9회 2사후 동점 투런 홈런을 맞고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 좋은 예다.
보통 사람들은 파도가 높이 칠 때는 잠시 피해 간다. 그러나 김병현은 그렇지 않았다. 굳이 스스로 뚫고 헤쳐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뜻대로 되지 않아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릴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싫으면 박차고 나오는 게 그의 타계책이고 생존 방식이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든, 저니맨이 됐든, 손가락질을 받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부러질 망정 굽히지 않았던 게 지난 10년 그의 초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피츠버그서 나온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할 소식이 없다. 시즌이 시작돼 판이 다 짜여진 탓이 크다. 또 구위가 예전같지 않고 구단마다 BK의 독특한 캐릭터를 잘 알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써는 김병현이 자신감을 누그러 뜨려야 될 타이밍인 것 같다. 아니면 진짜로 부러질 지 모른다.
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