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할 때 친구 녀석과 일본 여행을 갔는데 내게 “이젠 너도 시계 하나 있어야지?”라는 말을 했다. 뭔 소리? 난 시계 있는데? 내게는 무려 60만원이 넘는 오메가 시계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나를 시계 파는 곳으로 안내했다. 로렉스·까르티에·뭐에 뭐에 세상에 정말 많은 시계가 있었다. 난 한 달 후 에르메스에서 100만원 짜리 시계를 하나 구입했고, 그 후 돈이 생기면 시계를 사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종합소득세라는 것이 날아왔다. 이게 뭐지? 몇 년간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원천징수라는 것이 내가 국민의 의무로 내는 세금의 전부라고 알고 살던 나는 1800만원 이라는 세금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거 안내면 큰일 터진다는 소리를 듣고 통장을 보니 150만원이 남아있었다. ‘내가 미쳤었구나ㅠㅠ’ 후회해도 소용없었고 세금 낼 돈이 없어 S본부의 김상배 PD의 보증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 세금을 냈다. 난 그 후 시계를 더 사지 않았다.
결혼 때도 예물을 따로 하지 않은 우리 부부는 시계 살 일도 없었다. 그러다 신동엽이 찬 로렉스 서브마리너라는 시계가 너무 갖고 싶어 아내에게 졸랐다. 허락을 해줄 리 없는 아내에게 야광이라고 말했다가 혼나고 나중에는 300m 방수라고 이야기 했더니 당신이 1m50cm 넘는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핀잔을 먹었다. 그 후 지인의 기업 행사 사회를 아내 몰래 봐주고는 출연료를 시계로 받았다. 또 그게 걸려서 집에서 일주일은 유령으로 살아야 했다.
시계 욕심이 없는 사람은 왜 몇 백, 몇 천만 원을 헛되이 쓸까 이해를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기준 이상의 시계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여자에게는 핸드백이 있다면 의외로 많은 남자들은 시계를 좋아한다. 언젠가 가수 조영남 선배의 집에 갔다. 시계 사랑이 가득하신 선배에게 "왜 시계 좋아하세요?"라고 묻자 "멋진 미술 작품이잖아! 그걸 내 몸에 갖고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냐?"라고 답했다.(하나 얻어옴^^) 조영남 선배는 고가의 시계보다는 적당한 가격의 디자인이 좋은 시계를 선호했다.
사실 시계에 관심 있는 사람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를 보다가도 감독이 턱을 괴고 있을 때 잠깐 비치는 시계를 본다.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다가도 '이병헌의 저 시계가 뭐지?'하고 자꾸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대선 후보의 시계도 자꾸 바라본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은경 시계칼럼니스트’ 의 글을 찾아보시길)
사실 아무리 이유를 갖다 대더라도 사치품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가진 것은 없어도 시계라도 하나 비싼거 차서 있는 척 하려고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겠나. 허영심. 그 허점을 노리고 몇 년 전 코미디 같은 사기 사건이 있었다. 신문에 전세계 인구의 1%만이 찬다는 스위스 명품 시계 ‘빈센트’가 청담동에 상륙했다는 기사가 나갔다. 여기에 론칭쇼도 연다니 대단했다. 부유층과 연예인까지 연루가 되는 대단한 빈센트는 알고 보니 그냥 국내 어느 구멍가게에서 만든 시계였다. 희대의 시계 사기사건이었다.
시계로 인해 인생을 망친 아저씨도 있다. 지난달 26일 중국의 산시성. 고속도로에서 36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났다. 그 현장에 고위직 관리 한 명이 나타나 사고 차량 앞에서 밝게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다. 그는 힘든 현장 직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고 말했지만 네티즌들은 그동안 그의 행적이 담긴 여러 사진을 모아 그가 고가의 명품 시계를 차고 다님을 알아낸다. 그 후 그는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나며 ‘냄새나는 명품시계 쪽박의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남겨 줬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약 1년간 봉황 그려진 청와대 시계 찬 사기꾼을 조심하라는 농담도 있다. 뭔가 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던 예전 수법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어서다. 또한 아직도 짝퉁 시계는 날개 돋힌 듯이 잘 팔리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