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주장’ 신세다. 사령탑이 바뀐 후 박지성(31·QPR)이 제대로 주장 대접을 못 받는고 있다. QPR은 마크 휴즈 감독이 경질되고 해리 레드냅 감독이 부임한 이후 벌써 4경기를 치렀지만, 박지성은 한 경기도 선발 출장하지 못했다. 부상이라는 원인이 있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도 레드냅 감독은 주장 박지성에게 좀처럼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다.
박지성을 선발에서 뺀 레드냅 감독은 뉴질랜드 출신 백인 수비수 라이언 넬슨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박지성이 결장했던 위건전이 끝나고 레드냅은 "주장 완장을 찼던 넬슨은 환상적인 선수이자 리더이다"라고 이례적으로 칭찬했다. 아무리 부상이라서 제 컨디션은 아니지만 엄연히 따로 주장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선수로 리더로 치켜세우는 것은 박지성 입장에서 불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레드냅 감독은 토트넘 시절 래들리 킹(영국 흑인), 갈라스(프랑스 흑인), 스콧 파커(영국 백인) 등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출전하는 모양새도 찜찜하다.
지난달 24일 QPR의 새 사령탑에 오른 레드냅 감독은 16일 풀럼전까지 4경기를 지휘했다. 선덜랜드(0-0), 아스톤 빌라(1-1), 위건(2-2) 3경기 연속 무승부에 이어 풀럼 상대로 2-1 첫 승을 거뒀다. 그러나 주장 박지성은 레드냅 감독 부임 후 단 한 번도 선발 출장하지 못했다. 2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레드냅 체제 첫 경기인 선덜랜드전에서 박지성은 후반 20분에 교체 투입돼 25분을 뛰었다. 올 시즌 첫 교체 출장이었다. 두 번째 아스톤 빌라전에서도 하프타임에 교체 투입됐다. 박지성을 선발로 출전시키고 후반에 교체 아웃시킬 수도 있지만 레드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지성이 개막전부터 5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 및 8경기 연속 선발 출장한 것과는 천지차이다.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와 마크 휴즈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던 박지성은 시즌 초반 팀 성적이 부진한데다 QPR 선수들 사이의 불화설이 불거지면서 해외 언론으로부터 주장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EPSN사커넷은 "QPR이 에어아시아 회장의 소유라는 점을 제외하면 박지성이 주장직을 맡을 이유가 없어보인다"고 비꼬았다.
레드냅 감독은 박지성처럼 거액의 몸값을 받고 이적해 온 선수들보다 휴즈 감독 때 벤치에 있었던 넬슨, 클린트 힐, 제이미 매키, 숀 데리 등을 중용하고 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박지성, 에스테반 그라네로, 삼바 디아키테, 파비우 등은 출장 기회가 줄어들었다. 레드냅 감독은 미드필드 네 자리 중 좌우 측면에는 숀 라이트-필립스와 아델 타랍을 거의 붙박이로 기용하고 있다. 따라서 박지성은 중앙 미드필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중앙 자원에는 알레한드로 파울린, 음비아, 디아키테, 그라네로 등이 넘친다. 부상에서 돌아와도 주전으로 뛰기에는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