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기업 등기이사 연봉공개안 ‘실효성 논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 연봉 5억원이 넘는 상장사 등기이사 보수 공개가 의무화됐지만 대기업 대주주들이 등기이사직을 사퇴하고 미등기 이사로 경영에 참여할 경우 연봉공개 대상에서 빠져 실효성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책임경영 차원에서 등기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다른 대주주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18일 기업경영성적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국내 500대 기업 상장·비상장사 등기임원 보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 등기이사 평균연봉이 5억원을 넘는 기업은 176개이고, 공개대상 인원은 536명이었다. 이 중 대주주 일가가 등기이사로 올라 있는 기업은 54.5%인 96개사, 대상은 93명으로 조사됐다.
500대 기업 중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으로 범위를 좁히면 등기임원 평균연봉이 5억원 이상인 기업은 117개다. 이 가운데 대주주가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는 기업은 57.3%인 67개사, 인원은 60명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연봉공개 대상에 미등기 이사는 제외돼 대기업 대주주들이 등기이사직을 사퇴하고 미등기이사로 남을 경우 이들의 연봉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고 경영자 연봉 공개가 공론화된 이후 고액연봉으로 논란을 빚었던 오리온 담철곤 회장과 부인 이화경 부회장, 메리츠금융지주 조정호 전 회장 등이 등기이사직을 사퇴했다.
더욱이 상당수 기업들의 대주주들이 미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면 책임경영을 위해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잇는 다른 대주주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일례로 신세계 그룹의 경우 대주주 일가가 모두 비등기 임원으로 공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2월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이명희 회장과 정재은 명예회장, 딸 정유경 부사장 역시 미등기 임원이다.
반면 현대차 그룹의 경우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비롯해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큰 사위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둘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조카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까지 모두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이에 대해 CEO스코어 관계자는 “책임경영 차원에서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대주주들의 연봉만 공개되면, 앞으로 이들도 줄줄이 등기이사에서 사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형구 기자 nine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