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없고서는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없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 접어들면서 '졸전의 연속'을 보이고 있다.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승리하지 못했다. 중국 원정 사상 첫 패배라는 굴욕을 당했고, '약체' 시리아를 상대로는 경기 막판 시간을 끌면서 겨우 이겨놓고 A조 2위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모습이다.
조 1위는 포기한 모양새다. 승점 17점의 1위 이란을 잡을 의지조차 없다. 능력도 없어 보인다. 승점 13점의 2위 한국은 이란이 아닌 승점 12점의 3위 우즈베키스탄을 1순위로 경계하고 있다. 2위가 최종 목표인 셈이다.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아시아예선 조 2위 수성이 목표가 됐는가. 이정도로 추락한 상태다.
문제점을 찾고 고쳐야 다음이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데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진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있는 기이한 현상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KFA) 기술위원회(기술위)의 '헛다리'로부터 시작됐다. 이용수(58) 기술위원장은 지난 3일 울리 슈틸리케(63) 감독 유임을 선언했다. 슈틸리케 감독에 문제가 없음을 당당히 공표했다. 원칙 없는 선발 기준과 무전술도 기술위 시선으로 봤을 때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문제점을 언급했다. '훈련 시간 부족', '새로운 코치 선임' 등 시선을 슈틸리케 감독 외부로 돌리고자 했다.
이 전술은 성공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면서 외부 요인이 대표팀 부진의 이유로 둔갑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조기 소집이 현실화됐고, 여기저기서 경험 많은 새로운 코치 영입을 주장하고 있다. KFA는 능력 있는 코치 영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주객전도'다. 문제의 근본을 잘못 짚은 것이다. '뿌리'가 썩으면 절대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외부 요인은 문제의 핵심부터 해결하고 난 다음 과제다.
문제는 '슈틸리케'다.
국가대표 출신 축구전문가 A는 이런 말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 불통이 가장 큰 문제다. 중요한 전술을 구상할 때 코치와 소통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레알 마드리드에 독일 청소년대표팀 감독 등 최고의 팀 출신이란 자긍심이 대단하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아집으로 변했다. 한국 코치 의견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모든 전술을 독선적으로 꾸렸다는 말이다. 상황이 꼬이면서 소통은 더 멀리하고 자충수를 가까이 뒀다. '무전술' 탄생 배경이다.
또 다른 전문가 B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분열을 조장했다고 봤다.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 선수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정서를 받아들이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일을 자신의 독일 방식대로 밀어붙이기만 했다. 선수들이 감독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다."
선수단의 신뢰도 잃었다는 말이다. 선수 장악력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천수(36) JTBC 해설위원도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 장악에 실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부리그를 2명이나 선발해 경기에 출전시키는 건 고집으로 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대표팀을 향한 공정한 경쟁이 무너진 것이다. 선수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의리 논란'은 민심뿐 아니라 선수단도 분열시켰다." 그가 덧붙인 말이다.
문제의 본질이 확실히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의 '독선'이다.
능력 있는 코치를 선임하면 무엇하겠는가. 슈틸리케 감독이 높은 벽을 치고 그 능력을 활용하지 않을 텐데. 좋은 선수를 선발하면 무엇하고 훈련 시간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선수들이 감독을 신뢰하지 않는데.
이런 슈틸리케 감독이 유임됐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감독을 바꿀 수 없다면 감독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한 기술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고집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소통으로 채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뿌리' 슈틸리케 감독이 변하지 않으면 대표팀에 '열매'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대표팀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난제, 밖에서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슈틸리케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만 볼 수 있는 편협한 시각을 버리고 혼자가 아닌 다 함께 가야 한다. 불통이 만들어낸 전술과 선수는 과감히 포기하고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선수 탓과 논란의 발언은 더 이상 나와선 안 된다.
핵심 문제가 해결된 뒤 전술을 공유할 수 있는 지략가 코치, 조기 소집 등이 더해진다면 대표팀은 강해질 수 있다.
여기에 기술위 역할도 중요하다. 그동안 기술위는 슈틸리케 감독의 투정을 받아주는 역할만 했다. 선수 선발과 코치 선임 등 슈틸리케 감독이 만든 모든 논란은 기술위가 수긍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감시와 견제를 통해 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변화를 믿고 일단 기다려야 할 때다. 얼마나 변했는지는 최종예선 8차전 카타르전(6월 13일)이 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