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제훈(33)이 영리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타 배우들이 기피한 위안부 피해자 소재 영화 '아이캔스피크(김현석 감독)'를 기꺼이 선택하며 흥행과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제훈이 출연한 '아이캔스피크'는 지난 9월21일 개봉해 10월7일까지 274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180만 관객은 일찌감치 넘어섰다. 박스오피스 순위 4위권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열흘 간의 추석 연휴가 끝나는 오는 10일엔 3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황동혁 감독)'·'킹스맨: 골든 서클(매튜 본 감독)'·'범죄도시(강윤성 감독)' 등 추석 성수기를 노린 대작들이 일제히 공세에 나선 상황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다.
'아이캔스피크'는 2014년 CJ문화재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에서 75: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2014년에 시작됐지만 영화가 극장에 걸린 2017년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소재 문제다. 자칫 역사 왜곡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데다, 일본 한류시장을 구축해 놓은 배우들의 경우 일본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아이캔스피크'를 제작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여러 암초에 부딪혀 제작을 포기해야했다. 이에 대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누가 선뜻 위안부 피해자 소재 영화를 만들려고 하나. 투자 받기도 힘들었다. 배우들의 경우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일본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제작이 시작된 뒤 여러 배우에게 출연 제의가 갔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전했다.
영화 제작은 김현석 감독과 명필름을 만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리고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가 이제훈이다. 이제훈 또한 여느 배우들처럼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치에 공감하며 장고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이제훈이 오랫동안 출연을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이 일본 시장 눈치를 보는 것과는 다소 달랐다. 결국 흥행까지 성공시켰으니, 영리한 배우의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뚝심 있는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그는 저예산 영화인 '박열(이준익 감독)'에 출연한 바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나섰던 청년 박열을 연기했다. 한류 배우라 불리는 일부 배우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이제훈은 눈 앞의 이익 보다는 영화의 의미를 생각했다. 지난 6월 개봉한 '박열' 또한 손익분기점인 150만 명을 넘어 235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이제훈은 모두가 기피한 '아이캔스피크'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나 자신의 태도나 자세에 있어서 더 많이 공부하고 당당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들이 있다. '아이캔스피크' 역시 그렇다. 이 영화는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아픔이 힘들고 괴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에 멈추지 않는다. 아픔을 극복하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메시지를 준다. 그래서 이 작품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촬영하면서 많이 반성했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숙제 아닌가.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살면서 크게 마음에 두지는 못했던 부분이다. 목소리를 내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 아닐까. 개인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시기였는데 힘들 내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선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