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손이자 필력이다. '장르물의 대가' 김은희 작가가 역사와 좀비라는 자신의 '최애' 아이템만 모아 흥미로운 걸작을 탄생시켰다. 바로 넷플릭스 첫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Kingdom)'이다. '킹덤'은 지난달 25일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 후 기대 이상의 국내외 호평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화제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은 모양새다. 김은희 작가 역시 김은희의 이름값과 저력, 진가를 모두 입증시키는데 성공, 다시한번 '김은희 세계'를 견고하게 다졌다.
드라마 '싸인(2011)' '유령(2012)' '쓰리데이즈(2014)' '시그널(2016)' 등을 통해 장르물의 대가이자 명불허전 스타 작가로 떠오른 김은희 작가는 매 작품마다 촘촘한 스토리를 완성하며 발전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넷플릭스와 '킹덤'으로 의기투합, 넷플릭스의 첫 한국 드라마 도전에 기꺼이 응답함과 동시에 넷플릭스를 등에 업고 '소원성취'를 이룩했다. 한계없는, 제약없는 넷플릭스 울타리에서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김은희 작가의 손을 통해 '한국형 좀비물'의 새 지평이 열렸다.
'배고픔'을 전체 키워드로 조선시대, 역병, 탐욕의 메시지를 '좀비물'로 엮어낸 김은희 작가다. 매의 눈 넷플릭스가 이 '대어'를 낚지 않을리 없다. 시즌1이 공개되기 전 시즌2 제작이 결정되면서, 김은희 작가는 본격적인 시즌1 홍보가 시작되기 전 시즌2 대본 탈고를 깔끔하게 끝냈다. 못해도 두 발 씩은 앞서 나가는 프로와 프로의 만남이다. 시즌3, 4까지 이어질지는 미정이지만 김은희 작가는 "더 큰 세계관으로 나가보고 싶은 계획은 있다"고 귀띔해 기대감을 높였다.
물론 오매불망 '킹덤'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니다. 오프더레코드를 걸고 '시그널2'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차기작 구상은 현재 진행형. 김은희 작가는 "최근엔 SF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호러도 좋다. 한국적인 SF, 한국적인 호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로코(로맨틱코미디) 빼고는 다 해보고 싶다"고 단언했다. 글쓰는 것이 힘들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김은희 작가. 천생 작가 김은희의 세계관은 결코 무너질 수 없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국내 반응만큼 해외 반응도 궁금한 프로젝트다. 한국적인 콘텐츠를 넷플릭스 측은 잘 이해하던가. "회의를 했는데 의외로 수월했다. 혹시나 싶어 '유교적인 가치관이 들어 있는데 이해되냐'고 여쭤 봤더니 넷플릭스 측 책임자 분이 '사실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웃음) 하지만 '조선시대 상류층'이라는 콘셉트로 받아들이니 전체적인 맥락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다고 해 '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이 분들이 나를 어려워 하나?' 싶을 정도로 '대본을 고쳐달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씨 위에 조씨있다'를 외국인들이 이해 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쓰겠다'고 했지만 해외 반응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조선시대를 보면 당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문 쪽으로 배경을 튼 것도 그러한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디테일한 대사를 바꾸지는 않았다. 어차피 난 영어도 잘 못하고, 각국 언어로 번역이 되면 한국어 대사의 느낌이 100% 살아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다운 대사를 쓰는 것이 제일 재미있는 대사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번역본도 모니터 했나. "봐도 잘 모른다.(웃음) 초반에 감독님과 논의했던건 '강녕전'을 강녕전 스펠링 그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킹스 팰리스(King's palace)'로 번역할 것인지. 지휼헌 역시 지휼헌 발음 그대로를 표기할 것인지 '병원(hospital)'으로 쓸 것인지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넷플릭스가 우리보다 더 전문가이기 때문에 넷플릭스 측에 전적으로 맡겼다."
-캐스팅에는 얼마나 관여했나. "난 원래 캐스팅에 잘 관여하지 않는다. 그건 배우들과 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감독님의 권한이라 생각한다. 정말 엄청난 반대를 해야만 하는 캐스팅이 아니라면 다 받아들이는 편이다. 신인 오디션장도 무조건 참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본리딩을 할 때 처음 뵙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면 '킹덤'도 특별한 반대없이 캐스팅 된 배우들일텐데, 그 중에서도 좋았던 배우가 있다면. "영신(김성규)이가 너무 좋았다. 감독님과 캐스팅에 관해 상의할 땐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떤 배우가 좋겠다'가 보다 '이 캐릭터는 이런 캐릭터이고, 이런 분위기이다'는 것을 작가 시점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감독님을 믿는 것이다. 영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규 씨는 정말 영신에 딱 걸맞는 캐스팅이 아닌가 생각한다."
-직접 쓴 글이 영상화 된 것이다. 연출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무엇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궁궐 후원에 시체를 던지는 신이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겨진 더러운 비밀.(웃음) 어떻게 그려질까 싶었는데 참 좋았다."
-인육탕, 일명 '좀비스프'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피터지는 신보다 더 잔인한 느낌이다. "얼마나 배고프면 그 지경까지 갔을까. 기획 단계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고, 무조건 가져가야 할 부분으로 감독님도 함께 공감한 지점이다. 사실상 '킹덤'의 시작이기도 하다. 영신이가 만들어 먹일 때 그 대사를 한다. '굶어 죽던지, 이거라도 먹고 살던지' 그 정도로 피폐만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전 좀비물에서 등장한 좀비들과 '킹덤' 역병 환자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외국은 대부분 바이러스에 의한 부작용으로 좀비가 탄생하는데 '킹덤'은 배고픔 때문에 만들어진 역병이다. 웬만하면 좀비보다 '역병 환자'라는 표현을 더 사용하려는 이유다."
-다시 깨어는 왕의 상태와는 조금 다르다. "왕은 누구를 물어도 전염이 안 된다. 인육을 먹은 환자들만이 전염성을 갖는다. 시즌2에서 다른 병증이 조금 더 설명된다. 한양에 존재하는 권력층의 탐욕, 그런 한양으로 조금씩 밀고 들어가는 민초들의 배고픔을 같이 녹여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지가 '킹덤'이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임산부를 모아둔 장면도 인상 깊었다. "궁궐 같은 곳은 역병의 위험이 없음에도 어쩌면 역병보다 더 치열한 극한의 생존 경쟁이 가득한 공간이다. 중전의 탐욕이 만들어낸 에피소드다. 자신의 앞날을 전혀 모르는, 그럼에도 행복가에 차 있는 장면을 떠올렸고, '최대한 어린 임산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잘 연출해 주신 것 같다." -'킹덤'의 진정한 빌런은 양반이다. "숱한 전란을 겪을 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어떠한 큰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지만 누군가는 도망간다. 무책임하게 떠나 버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권력층의 여러 모습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