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지난달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주축 전력을 잃었다. 2018시즌 신인왕이자 올 시즌 고정 3번 타자인 강백호(20)가 파울 타구를 포구하다가 구조물 볼트에 손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복귀까지 8주가 필요하다. 상승세던 KT에 적신호가 켜졌다. 공격력 저하가 불가피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 조용호를 강백호의 자리에 내세웠다. 유한준을 우익수로 돌리고, 윤석민을 지명타자에 투입하는 게 순리로 보였다. 그러나 교체 출전마다 뛰어난 작전 수행력을 보여주며 팀 기동력 상승을 이끈 조용호를 믿었다.
이 선택은 통했다. 조용호는 강백호 부재 뒤 치른 첫 경기, 6월27일 사직 롯데전에서 4타수2안타·1타점·2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10-2 대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부터 KT가 창단 첫 7연승을 거둔 3일 수원 삼성전까지 여섯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서며 타율 0.350·출루율 0.500을 기록했다. 사령탑은 탁월한 팀 배팅에 수준급 타격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그를 극찬했다.
험난한 길을 걸은 선수다. 단국대 재학 시절, 현재 보여주고 있는 근성과 작전 수행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부상에 발목 잡혔다. 4학년 때 오른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주 포지션인 2루수 대신 외야로 나가야 했다. 실패가 이어졌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했다. 2011년 11월에는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지만 다시 발목 부상을 당하며 한 달 만에 방출됐다.
2012년 3월부터 공인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다. 당시 그는 프로 무대 꿈을 잠시 접었다. 생업이 중요했다. 복무 중 겸직 허가를 받고 일과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했다. 우유배달 신문배달, 피자집 등. 중국집 주방에도 잠시 있었다고 한다.
소집 해제 뒤 재차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상 은퇴 상태였지만 야구가 하고 싶었다. 대학교 은사인 김유진 코치의 도움으로 다시 배트를 잡았고, 2014년 8월에는 당시 SK 육성총괄이던 김용희 전 감독과 스카우트에 눈에 들어 육성 선수로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트레이 힐만 감독 체제던 2017시즌에 1군 무대에 데뷔했고, 기존 주전 부상을 메우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프로 무대에서도 시련을 겪었다. 이듬해는 주전 경쟁에 밀리며 1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 뒤에는 KT로 무상 트레이드가 됐다. 1차 스프링캠프 도중 2군 캠프로 낙마했고, 시즌 개막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 다시 내야수 전환을 시도하며 경쟁력 확보를 노리기도 했지만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조용호는 이전부터 "작전 수행력이 좋고, 항상 질주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이강철 감독은 외야수 배정대가 부상을 당한 자리에 그를 투입했다. 선수는 기동력뿐 아니라 타석에서도 매서운 스윙을 보여줬다. 단숨에 외야 백업 1순위가 됐고,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자 선발 출전을 보장받았다. KT의 창단 최다승을 이끄는 선수로 거듭났다.
야구 인생, 중요한 기로마다 부상에 발목 잡혔다. 그래서 그는 과욕을 경계했다.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그는 "나는 항상 부상에 시달렸다. 그동안 준비한 게 많고 이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자칫 조심스러운 훈련 자세가 열정과 패기가 부족한 것으로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고 했다.
실제로 지금도 훈련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전 경기는 집중력이 다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립한 자신의 야구를 본 무대에서 쏟아내고 있다. 사령탑도 이제 그를 실전용 선수로 인정한다.
조용호는 지난 3월 아빠가 됐다. '예비 아빠' 시절, "분유, 기저귀 값을 벌어야 한다. 모든 가장이 그렇겠지만 너무 절실하다"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야구 인생에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다. 조용호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