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박해민(29)은 올 시즌 전반기를 돌아보면서 못내 아쉬워했다. 스스로 "경기에 계속 나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매년 전반기 성적이 안 좋아서 팀에 너무 미안했다"며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5~6월 정도엔 살아났는데, 올해는 안 좋은 시기가 7월까지 이어져서 힘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박해민은 명실상부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수비력과 주력 모두 리그 톱클래스 중견수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올 시즌엔 타격이 유독 잘 풀리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는 "올해는 진짜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변화를 많이 줬는데도 결과가 계속 좋지 않았다"며 "지난 시즌 마지막쯤 좋았을 때의 폼과 밸런스로 돌아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해민의 전반기는 왜 힘겨웠을까. 그는 "타석에서 자꾸 나 자신과 싸웠다. 투수가 아닌 나와 맞붙다가 전반기 94경기가 지나가 버렸다"며 "전반기에 2할 5푼을 쳤으니 나 자신에게 완패한 셈"이라고 했다.
야구가 안 풀리면 안 풀릴수록, 지키고 싶던 목표는 오히려 마음의 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는 "5년 연속 도루왕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아무도 못 했던 기록이니까, 최초니까, 꼭 이루고 싶다는 그 마음이 내게는 독이 됐던 것 같다"며 "한 타석 못 치고, 출루를 못하고, 그렇게 도루할 기회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나 자신을 나도 모르게 옥죄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다. 마음가짐을 다르게 했다. "어차피 4년 연속 도루왕도 몇 명 못 해본 기록 아닌가. 먼저 달성했던 선배님들(정수근·이대형)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이제는 올해 도루왕을 못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아직 물러설 단계는 아니다. 27일까지 도루 16개를 해내 1위 박찬호(KIA·22개)에 6개 차로 뒤져 있다. 박해민은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다만 목표를 못 이루더라도 내가 부족했던 것으로 받아들이고, 4년 연속 도루왕에 충분히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또 "후반기에는 타석에서도 내 폼에 신경을 쓰기 보다 투수와의 타이밍 싸움에 집중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후반기 스타트를 무척 잘 끊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첫 경기였던 지난 26일 대구 한화전에서 역전 결승 2점 홈런과 2루타를 포함해 3안타 3타점을 몰아쳤다. 사이클링 히트에 3루타 하나가 모자란 맹활약으로 팀 승리에 앞장섰다. 그 결과로 그는 경기 후 중계방송사와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고,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넬 기회도 얻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됐을 만큼 스스로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박해민은 "경기 끝나고 (응원단상에) 1년 만에 올라간 것 같다. 올해 전반기에는 한 번도 못 올라갔고, 방송사 인터뷰도 올해 처음으로 했다"며 "그만큼 '올해 내가 야구를 정말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단상 인터뷰를 할 때 기분이 남달랐던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박해민은 체력과 의지가 모두 강한 선수다. 웬만해선 쉬지 않는 '철인'이다. 1군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2014년 이후 단 한 번도 부상으로 장기 이탈한 적이 없다. 2015년과 2017·2018년에 세 시즌이나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올해 역시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모두 출장했다. 최근 4시즌 동안 결장한 경기가 2016년 3경기 밖에 없다.
그는 "연속 경기 기록에 대한 애착이 분명히 있다. 안 아프고 꾸준히 잘했다는 점에서 정말 가치가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올해는 성적이 잘 안 나오다보니 이러다 경기를 못 나갈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걱정도 했다. 다행히 감독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어떻게든 지켜올 수 있었다"고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박해민은 그저 지금처럼 부상 없이 꾸준히 오래 뛰면서 더 자주 팀 승리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는 "우리 팀에 진짜 '철인' 최태원 코치님이 계시지 않나. 나는 아직까지는 부족하고 갈 길이 멀지만, 최대한 오랫동안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가고 싶다"며 "일단 지금은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돼서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