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기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KT 위즈와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를 '3인 포수 체제'로 치를 계획이었다. 변수가 많은 단기전을 더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불펜 뎁스(선수층)를 고려해 투수 1명을 추가하고 포수 엔트리를 최종 둘(이지영·김재현)로 짰다. 베테랑 안방마님 이지영(36)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이지영은 준PO에서 '원맨쇼'를 펼쳤다. 시리즈 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 사실상 풀타임을 소화했다. 9회 대타로 교체된 3차전을 제외하면 빠짐없이 안방을 지켰다. 타석에선 더 인상적이었다. 5경기 타율이 0.421(19타수 8안타). 장타율(0.579)과 출루율(0.421) 모두 기대를 웃돌았다. 주로 6~7번에 배치돼 상·하위 타선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에 충실했다. 그의 활약은 정규시즌 팀 타율 9위 키움 타선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였다.
홍원기 감독은 24일 LG 트윈스와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1차전에 앞서 "준PO 숨은 MVP(최우수선수)가 이지영이라고 생각한다"며 "송성문이 (5차전) 결승타도 치고 푸이그도 중요한 타점을 올렸는데 그 과정에 이지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영은 준PO 5차전에서 4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1-2로 뒤진 4회 말 선두타자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키움은 2사 후 송성문의 결승 투런 홈런으로 PO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지영은 시리즈 5경기 연속 안타에 2경기 연속 멀티히트로 KT 마운드를 괴롭혔다. 준PO MVP는 투수 안우진, 5차전 MVP는 송성문의 차지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홍원기 감독은 "(이지영을) 공·수 MVP로 뽑고 싶다"며 재차 강조했다.
이지영은 외야수 이용규(37)와 함께 코칭스태프가 신뢰하는 베테랑이다. 2018년 12월 삼각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 히어로즈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박동원(현 KIA 타이거즈)과 안방을 책임지며 경기 출전 횟수를 늘렸다. 2019년 11월에는 계약 기간 3년, 최대 18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잔류 계약을 했다. 그만큼 내부 평가가 좋았다. 키움은 지난 4월 박동원을 KIA로 트레이드하며 '주전 이지영'에 힘을 실어줬다.
이지영의 강점은 타격보다 수비다. 키움의 젊은 투수들의 믿고 공을 던진다. 마무리 투수 김재웅은 "많이 의지하고 있다"며 "경험을 많기 때문에 경기 전후로 조언을 해주신다. 투수들 컨디션에 따라 마운드에서 좋은 피칭을 할 수 있게 잘 이끌어주신다. 그러다 보니 마운드에서나 훈련 중에도 자주 대화한다"고 전했다. 이지영은 통산 한국시리즈(KS)만 22경기를 뛰었다. PO에서 '난적' LG를 꺾으려면 그의 경험이 또 한 번 빛을 발해야 한다.
포스트시즌(PS) 강행군도 끄떡없다. 체력 소모가 큰 포지션(포수)이지만 이지영은 관련 질문이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 홍원기 감독도 마찬가지다. 홍 감독은 "이지영은 나이 얘기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며 "운동장에 가장 먼저 나와 훈련한다. 본인의 루틴을 매일 같이하니까 체력 문제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