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킬러, 그녀'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해외 게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오랜만에 한국 팬들 앞에 섰다.
강지영은 2014년 카라 탈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길에 발을 디뎠다. 그의 나이 스물이었다. 4년간 영화 '암살교실' 드라마 '오펀 블루개' '오사카 순환선'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일본어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고,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그친 적도 있다. 엄마가 해주는 한국음식이 그리웠지만 마음이 약해질까봐 일본에만 머물렀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성장했고, 단편영화 감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러브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과 뮤직비디오 컬래버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낸 강지영은 이제 겨우 만 24세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처음 1, 2년은 힘들었다.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났다. 너무 외로웠다. 한국 음식이 정말 그리웠다. 막상 일본 연예계에 발을 디디니까 문화가 다르더라.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다른데 그 안의 사람도 다르다. 그런 것들이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일본에서도 나의 진출이 이슈가 됐다. '왜 한국 사람이 일본 드라마에 나오냐'는 반응이 나오니 자신이 없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더라. 심지어 첫 드라마는 엄청난 인기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역할을 맡았다. 그 다음 영화도 유명한 만화 원작이었다. 애니메이션 팬들이 좋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역시 제일 큰 어려움은 언어다. 하루에 몇시간씩 연기 선생님과 일대일로 대본을 체크한다. 억양이 다르니 될 때까지 하는 거다. 틀리다 보니까 하다가 올었다. 울면서 연기한 기억도 많다. 일부러 한국도 많이 가지 않았다. 일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일본에 있었다. 한국에 가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믿게 된 순간이 있었나. "어느날 단편영화 세 편의 주인공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거다. 내레이션이 많았다. 한국인 역할이었는데 일본어도 하고 대만어도 하는 캐릭터였다. 일본어 내레이션이 많아서 고생했다. 내레이션 녹음하는 부스 안에서 울었다. 감독님이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운 거다.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눈물이 뚝 그치더라. '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대견하더라. '왜 사서 고생을 하지'라는 생각도 했는데, 남들이 노력한 걸 알아주는 순간 정말 뿌듯한 거다.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주시는 한 계속 노력해서 좋은 작품으로 찾아가고 싶다."
-일본에서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창피하다.(웃음) 일본에서 한 초콜릿 브랜드의 광고를 찍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연출하게 됐다. 연기자로서 현장에 가 있는 것과 감독으로서 현장에 가 있는 것은 정말 다르더라. 도움이 많이 됐다. 대본을 볼 수 있는 힘도 는 것 같고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더 잘 알게 됐다."
-이와이 슌지 감독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단편 영화를 연출할 때 이와이 슌지 감독님이 총괄 연출자였다. 이후 제 뮤직비디오를 찍어주셨다. 시나리오는 없었지만 영화처럼 찍었다."
-한국 배우 혹은 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싶은 생각은 없나. "전도연 선배님의 연기를 좋아한다. 만나본 적은 없다. 꼭 뵀으면 좋겠다. 한국적인 작품을 하고 싶다.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님과 같이 해보고 싶다. 불러만 주신다면 다 할 것이다."
-카라 멤버들과는 연락을 주고 받고 있나. "멤버들이 출연한 작품을 다 봤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불화설도 없었다. 지금도 모바일 메신저 그룹 채팅방이 있다. 규리 언니는 '애기야 대견하다'고 말해준다. 하라 언니는 일본에서 자주 본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해외라고 해서 두려워할 건 없다. 막상 나와보면 똑같다. 물론 언어는 별개다.(웃음) 어딜가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있는 그대로 자기가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는 걸 느끼면 어디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