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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삼국지] 장온, 손권이 후사를 맡기려 한 촉오동맹 일등공신
장온은 오군 오현 출신으로 그야말로 강동토박이였다. 젊어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명성이 자자했다. 비슷한 또래의 인물들 중 견줄만한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다. 손권이 그를 불러 직접 면접했다. 그가 묻는 말마다 조리 있게 대답하니 이를 본 사람마다 다 감탄해 마지않았다. 심지어 고집불통 노인인 장소조차도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노부가 마음을 의탁하고자 하니, 그대는 태도를 분명히 하기 바라오.”손권은 장온을 발탁해 파격적으로 인사담당 책임자인 선조상서에 임명했다. 그 무렵 촉나라 제갈량이 등지를 사신으로 보내 서로 동맹관계를 복원하자고 제안해왔다. 이때 이미 손권은 형식적으로나마 위나라에 굴복해 속국을 자처하고 있었다. 손권은 내심 촉과 동맹을 맺고 싶었으나 위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천자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던 촉한이 위나라의 번국을 자처하고 있던 동오와 대등한 관계를 맺고자 할지도 의문이었다. 손권은 촉나라 조정을 설득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만한 인물이 필요했다. 임기응변의 재능과 뛰어난 언변을 아울러 갖춘 장온과 같은 인재가 적임자였다. 장온이 외교사절로 선발돼 촉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2세였다. 장온이 사신으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갈량이 그를 극진히 대접하라고 지시했다. 장온이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촉나라 지방관들과 황제가 보낸 사신이 마중을 나와 여러 번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푸짐한 선물을 주었다. 뜻밖의 환대에 감동한 장온은 성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촉나라 조정과 제갈량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성도에 도착한 후 장온은 더욱 환대를 받았다. 황제 유선이 베푸는 공식적 연회는 물론 제갈량을 위시한 조정의 중신들이 경쟁적으로 그를 초빙해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그때마다 장온은 자신의 화려한 언사와 문장을 뽐낼 기회가 있었으며, 촉나라 사람들은 그의 재능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장온에게는 꿈과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장온은 점차 사신의 신분을 잊고 드러내 놓고 촉한 조정을 찬양하고 은근히 촉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후일 장온이 숙청당하는 구실로 작용하게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어쨌거나 장온은 오와 촉의 동맹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성공적으로 기여했다. . 손권이 황제가 된 후 장온은 태자 손등의 태부가 됐다. 태자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곧 차기 정권의 실세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신임을 받고 중용되던 장온은 기염의 사건을 계기로 한순간에 폐출되고 만다. 그 후 6년이란 세월 동안 그는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결국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장온이 숙청되자 제갈량은 그 이유를 며칠이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 이유를 알겠다. 그가 청탁과 선악을 명백히 구별했기 때문이다.”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세상에는 매사에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구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적을 많이 만든다. 세상을 살다보면 수많은 인생의 고수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흐리멍텅해 보일 정도로 자신의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영웅의 이면] 오나라 조정 내 북방출신과 강동출신의 갈등 장온(A.D 193~230년)의 숙청은 동오정권 최대 미스터리의 하나이다. '오서'에는 장온의 숙청이유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손권은 장온이 사신으로 갔다 와서 촉나라의 정치를 칭찬한 것에 대해 내심 불만스러워 했고, 또 장온의 명성이 드높아 중망이 모이자 그를 의심하다가 때마침 기염의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핑계로 그를 숙청했다는 것이다. 기염은 장온의 동향 후배로 그가 선조상서로 있을 때 선조랑으로 발탁한 사람이다. 기염은 장온의 뒤를 이어 선조상서가 됐다. 기염은 심지가 굳고 매사에 철저한 성격이었다. 그는 당시 동오 조정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들 중 무능 부패한 관리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이들을 숙청하고자 했다. 기염이 이들을 탄핵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잃거나 몇 등급씩 강등되어 제 자리를 지킨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기염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기염이 개인감정에 의해 일을 처리하며 공적인 시각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참소했다. 오나라 조정은 기염을 지지하는 파와 이에 반대하는 파로 둘로 나누어졌다. 양쪽은 서로 파당을 결성해 치고받고 싸웠는데, 워낙 기득권 세력이 강했으므로 곧 기염 등이 불리해졌다. 결국 기염과 서표는 죄를 뒤집어쓰고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 기득권 세력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기염과 서표의 배후가 장온이라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장온이 이들을 발탁했고 숙청 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뒤에서 배후조종했다는 것이었다.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 손권은 결국 장온을 폐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기염의 사건은 사실은 손권의 의중에서 시작된 것이다. 동오정권의 핵심세력은 주로 손책을 따라 북방에서 유입된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안정된 중앙정부가 들어서면 그에 귀순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북방이 안정되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이를 대단히 위험하게 본 손권은 동오정권 내의 북방출신 인사들을 숙청하고 강동출신 인사들로 정권 내부를 재편하고자 했다. 오군 출신의 장온과 기염이 연속해서 인사책임자로 선택된 이유였다. 그러나 창업공신인 구세력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치단결해 반격에 나섰다. 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구세력의 압력에 밀린 손권은 장온을 위시한 신진세력을 희생함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되찾는 길을 선택했다. 장온이 촉나라를 찬양했다거나 파당을 형성했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거짓말 벗겨보기] 장온이 건방 떨다가 망신 당했다고?'삼국지연의'에는 오나라의 사신으로 촉나라에 온 장온이 건방을 떨다가 진복이라는 학자에게 망신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온이 진복의 학식과 재치에 탄복한 일은 있지만 그가 교만하게 행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장온은 촉오동맹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친촉파 인사였다. 그는 후일 촉나라 조정을 찬양했다는 죄목으로 숙청됐다. '삼국지연의'는 동오의 역사를 가볍게 다룬다. '삼국지연의' 자체가 촉과 위의 대결구도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나라는 *남방의 6조 문화를 개창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중원이 5호 16국의 혼란을 겪는 동안 중국적인 전통을 온전하게 계승 보전한 것이 남방의 6조 문화였다. 풀이 *남방 6조 문화 : 강남의 풍부한 물자, 이민족에 쫒겨 남하한 지식층의 유입 등으로 꽃핀 문화.
2014.02.04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