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고 에이스'가 이제 3연패를 끊는 어엿한 KIA 선발 투수로 성장했다. 팬들은 데뷔 첫 승을 올린 어린 투수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승혁(21·KIA)이 2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6⅔이닝 4피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 호투하며 2011년 프로 데뷔 후 첫 승을 거뒀다. 김진우의 부상 공백과 송은범의 부진으로 선발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KIA가 시름을 덜었다.
개인 최고 기록을 줄줄이 세웠다. 데뷔 후 가장 긴 이닝 동안 개인 최다 투구수(117개)를 기록했다. 선발의 미덕으로 불리는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했고 올 시즌 가장 빠른 직구(시속153㎞)를 스트라이크존 곳곳에 꽂아 넣었다. 선동열(51) KIA 감독은 "한승혁이 오늘 호투했다. 자신의 주무기인 직구로 윽박지른 것이 주효했다. 다음 주말 3연전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위기를 잘 극복했다. 한승혁은 2회 1사 2루에 이재원에게 1타점 중전안타를 허용했다. 그러나 후속 두 타자를 연속 뜬공을 돌려세우며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4회에는 선두 최정에게 좌전안타를 맞았지만, 상대 4번타자 스캇에게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마지막 위기는 5회. 첫 두 타자에게 삼진을 내리 잡아낸 그는 조인성의 볼넷, 김성현의 중전 안타, 김강민의 볼넷으로 만루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박재상에게 4구째 시속 148㎞ 직구를 꽂아넣으며 삼진으로 처리했다. 타선 지원도 이어졌다. 안치홍은 팀이 1점차로 앞서던 9회 초 1사 1루에 좌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넘기며 승부에 쐐기를 밖았다.
어쩌다 한 번 잘 던진 것이 아니다. 한승혁은 지난 15일 홈 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에 프로 첫 선발로 나서 5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총 93개를 던졌고 삼진도 8개나 잡았다. 선동열 감독은 "조금 더 지켜봐야 겠지만, 이렇게만 던져준다면 마운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흐뭇해 했다. 그리고 호투는 2경기 연속 이어졌다. 박종하 KIA 전력분석 코치는 "경기를 거듭할 수록 직구의 좌우 코너웍을 활용하고 있다. 주자가 있을 때는 150㎞ 강속구를, 주자가 없을 때는 140㎞대 직구를 던져 완급조절을 한다. 과거 스트라이크존을 상하로 밖에 활용하지 못했지만 지난 캠프 이후 일취월장 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승혁은 이날 총 86개의 직구를 던졌고 이 중 스트라이크가 55개, 볼이 31개를 기록할 만큼 안정된 제구력을 자랑했다. 관중들은 7회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두고 내려가는 어린 투수를 향해 아낌 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4년이 걸렸다. 덕수고를 졸업한 뒤 2011 KIA 1라운드 8순위로 KIA에 입단한 한승혁은 고교 최대어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한승혁을 지켜보기 위해 고교 무대로 달려왔다. 선동열 감독의 부임 첫 해 타이거즈 맨이 된 그는 입단과 동시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재활을 거듭한 그는 입단 4년만에 꽃을 피웠다.
아들은 첫 승을 거둔 후 부모님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한승혁의 아버지는 과거 배구 스타이자 대한항공 감독이었던 한장석(52) 씨다. 그는 "첫 승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동안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이 가장 떠오른다"며 "덕수고 졸업 후 처음 받아보는 응원이었다. 이런 환호를 계속 듣고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한승혁과의 일문일답.
-소감은.
"첫 승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뜻깊다. 지난 캠프 때 열심히 준비했는데 올해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빨리 나왔다."
-직구 활용이 많았다.
"변화구 제구가 잘 되지 않아서 직구 패턴으로 갔다. 상대가 볼을 쳐주기도 했고, 직구 구위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연패 중이었다. 부담은 없었나.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던졌다. 마운드에서 초반 1이닝씩만 잘 막자는 각오로 던졌는데 시간이 갈 수록 공이 더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첫 1회를 빼놓고는 점점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특별히 선발로 나선다고 해서 떠는 편은 아니다."
-5회 2사 만루에 직구를 던져 삼진을 이끌어 냈다. 김정수 투수 코치가 올라와서 뭐라고 했나.
"후회없이 하자고 하셨다. 후회 없이 자신있게 던지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7회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두고 있었다. 아쉽진 않았나.
"투구수가 많았다. 후회는 없었다."
-강판할 때 관중석에서 이름을 연호했다.
"덕수고 졸업 후 처음 듣는 환호다. 앞으로도 계속 듣고 싶다."
-4년 만에 빛을 본다.
"재활이 쉽지 않았다. 잘 챙겨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 프로에 와서 가장 좋은 몸상태와 컨디션으로 공을 던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