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은 술을 잘 못한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쉽게 빨개져, 편한 자리가 아니면 즐기지 않게 됐다고 한다.
로이킴의 이미지가 그렇다. 반듯하고 정돈됐고 단정하며 조금은 인간미가 떨어져보이는 느낌. 그래서 '애늙은이'라는 소리도 듣고, '엄친아'라는 얘기도 한 동안 따라다녔다. 중산층 이상으로 알려진 집안 배경이나, 미국 명문대 유학생이라는 신분도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한 몫을 했다.
그래서 실제 로이킴이 궁금했다. 이제 10대를 막 벗어난 로이킴은 어떻게 조숙함의 대명사가 됐을까. 만나서 긴 시간 이야길 나눠보니, 그런 점이 있긴 하더라. 근데 우리가 머리 속으로 그렸던 이미지와 다른 부분도 많았다.
'완벽'보다는 '여백'이란 단어와 어울렸고, '차갑다'란 느낌보단 '따듯하다'는 느낌이 앞섰다. 까다롭지 않았고, 인간적인 매력도 느껴졌다. 물론 스물한살 청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조숙함'이 없진 않았다. '오디션 스타'의 숙명같은 외로움, 자작곡을 쓰고 표현하는 괴로움도 느껴졌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엔, 잘 못한다는 술도 제법 들이켰다. 편한 자리가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로이킴
-술을 잘 못한다고 하던데.
"아예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근데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요. 빨개진 내 모습이 싫어서 즐기진 않아요."
-술 마시고 실수해 본적도 없겠네요.
"토를 한 적은 있는데, 필름 끊길 때 까지는 마셔 본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술자리를 빼지는 않아요. 저 때문에 재미없어지면 민폐잖아요. 그리고 친한 사람들과의 자리라면 저도 많이는 아니지만 술을 마시긴 해요."
-대학 첫 학기는 원래 술이 전부인데요.
"미국에서는 술 마실 나이가 안됐었어요. 이제는 가능하겠네요."
-술을 즐기지 않으면 친구들과는 뭘 하나요.
"우린 사우나를 자주 가요. 목욕탕을 가면 서로에게 진실해질 수 있어서 좋아요. 남자애들끼리 술 마시고 진지한 이야기 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얼마 전에는 (정)준영이 형이랑 사우나를 갔어요. 진짜 허름한 곳이었는데 학생들이 있는 거예요. 우릴 알아봤는지 핸드폰을 들고 있었어요. 그 때 매니저 형이 우릴 딱 가려줘서 살았죠. 또 한 번은 일산에 있는 사우나를 갔는데 조형기 선배님을 만난 거예요. 예의가 없어 보일까봐 알몸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안녕하세요 로이킴입니다'라고 했더니, '뭐라고 로이킴이라고?'라면서 소리를 지르시는데 '만나 뵈어서 좋았습니다'하고 바로 나왔어요. 하하."
-목욕탕은 언제부터 가게 됐나요.
"사람이 없는 허름한 곳엔 들어가면서부터 특유의 향기가 확 나잖아요. 탈의실 테이블 위에 말도 안 되게 큰 손톱깎기가 놓여있고 그런 곳이요. 아버지가 예전부터 저랑 같이 갔었어요. 지금도 아버진 일을 끝내면 매일같이 가시거든요. 하루 일과를 목욕탕에서 마감하시는 거죠."
-미국 생활은 어떤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았다고 하던데.
"한국이면 모르는데, 외국 고등학교라 절 잘 생기게 보진 않았을 거 같아요. 하하. 그래도 학년 회장은 계속 했었고요. 마지막 전교 회장 선거는 떨어졌네요. 제일 친한 인디언 친구랑 둘이 나갔는데 갑자기 중간에 들어온 흑인 여자 아이에게 져버렸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여자 애들이 그 친구에게 몰표를 줬다고 하더군요."
-공부를 하면서 아시안에 대한 편견은 못 느끼나요.
"겉으로는 그런 게 없어요. 뭔가 드러나지 않는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차이점은 있는 게 사실이고요. 고등학교 때는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다 한국인이었어요. 그래서 그런걸 못 느꼈고, 오히려 대학에 오니까 더 융화되기 어렵더라고요. 대학교는 약간 끼리끼리의 느낌이 있어요."
-가수가 됐는데 공부가 더 하고 싶나요.
"처음에는 대학을 가기 위해 했어요. 가수가 된 후에는 생각이 많아졌죠. 제가 공부하는 것과 제 일이 연관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번에 미시경제학을 들었는데 이걸 언제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막상 시작하게 되면 열심히 하게 돼요. 점수를 잘 받는 게, 습관이 된 거 같아요.
"
-그 만둘 생각은 안 해 봤나요.
"그만 둘까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 캠퍼스 생활은 꿈꿔왔던 거고요. 가수라는 직업을 같고 그 일만 하게 되면, 너무 심취되거나, 도취 되던가 사람이 조금은 어두워지는 거 같아요. 그런 외로움 같은 직업병이 있는 거 같아요. 대학생활은 그런 것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돼요."
-이번에 학기가 시작하면 뭘 공부하게 되나요.
"수업 중에 레코딩 과목이 있는데 그 수업을 들을 생각에 신나있는 상황입니다."
-가수 이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실력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잖아요. 그림·사진작가 등 잘 맞는 분들끼리 모여서 크루를 형성하는 거예요. 크루와 프로젝트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 누나도 미술을 해서 조금은 아는데, 아티스트들이 갤러리에 그림을 올리는데도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자기 홍보를 위해서는 갤러리에 자존심을 꺾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요. 그림을 팔아도 갤러리에서 떼 가는 게 또 있고요. 그래서 이런 예술가들이 예술 외적인 부분으로는 신경을 덜 쓰게끔 하는 일들을 좋은 사람들과 진행해보고 싶어요."
-올 한 해를 보낸 소감은요.
"고생했어요. 새 앨범도 생각했던 거 보다 잘 됐고, 후회되는 건 없어요. 후회하면 제 인생이 너무 우울해져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만족하고 행복하게 지나갔어요. 마음 같아서는 내일 3집을 내고 싶지만, 모든 걸 다 생각해가면서 준비해야 하니까, 제 준비가 끝나면 하고 싶어요. 음악 하는 형님이 있는데 '지금 당장을 보지 말고, 10년 뒤를 보자'고 하더군요. 10년간의 행적을 그래프로 그렸을 대 곡선이 아래로 향해있을 때가 더 많을 수는 있지만 결국 10년 뒤에는 제가 생각했던 거 보다 더 위에 있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