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는 올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를 승차 없이 승률에서 밀려 바짝 뒤쫓았다. 그러나 최근 한 달 동안 팀은 와르르 무너졌다. 간신히 5강에 턱걸이했고, 포스트시즌 한 경기 만에 탈락했다.
키움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지난해 11월, 준우승을 이끈 장정석 감독의 재계약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새로 구단의 수장이 된 하송 대표이사는 손혁(47) 감독을 선임했다. 하 대표가 감독 면접을 봤다고 하지만,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의 의견도 반영됐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은 손 감독은 "프런트(구단)가 많이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런트는 도와주지 않았다. 허민 의장을 비롯한 구단 수뇌부는 계속 1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손 감독을 압박했다는 후문이다. 손 감독은 지난달 8일 정규시즌 11경기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당시 키움은 3위였다. 상위권 팀의 감독이 정규시즌 마무리 단계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은 KBO리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사례였다.
키움은 손 감독 후임으로 김창현(35) 퀼리티컨트롤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했다. 김 감독 대행은 프로선수 경험이 없고, 주로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선수단 운영의 큰 틀은 내가 짠다"고 강조했지만,여전히 구단 수뇌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될 수 있어 보였다. 키움은 남은 11경기에서 6승 5패를 거두고 5위로 떨어졌다.
그동안 이장석 대주주의 횡령·배임 혐의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최근 5시즌 동안 4번이나 가을야구에 올라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올해는 경쟁이 치열했던 막판에 수장이 바뀌면서 선수들마저 우왕좌왕했다. 유격수 김하성(25)은 "똑같은 선수들이 경기를 뛰고 얻은 결과라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키움의 새드엔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년에는 전력 누수가 심하다. 팀의 대들보인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올해 슬럼프가 깊었던 박병호(34)도 30대 중반으로 전성기 시절의 경기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장석 대주주가 내년에 출소하면 구단 수뇌부에 또 지각변동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 대주주는 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키움은 수차례 예상을 뛰어넘는 '파국경영'을 보여줬다. 또 보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