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선발진과 불펜진 모두 제 몫을 다했다. 타선도 정규시즌 보여준 '불방망이'는 아니었지만 적재적소에 득점을 뽑아냈다.
물론 순탄한 여정은 아니었다. 고비도 있었다. 1차전에선 상대 선발투수를 공략하지 못했다. 2차전도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지점에서 선전이 이어졌고, 침묵하던 베테랑들이 진가를 드러냈다. 적지에서 3연승을 거두며 만든 우승. 8년 만에 KBO리그 정상에 우뚝 선 KIA의 한국시리즈를 돌아본다.
◇ 1차전 - 반격 예고한 버나디나의 '한 방'
20승 투수 헥터 노에시는 의외로 고전했다. 선취점은 야수 실책 탓이다. 4회 1사 1·2루에서 2루수 안치홍이 평범한 타구를 포구하지 못했다. 만루에 놓였고 후속 타자는 삼진 처리했지만 오재원에게 볼넷을 내주며 '밀어내기' 득점을 허용했다. 이어진 5회는 박건우에게 적시타, 김재환과 오재일에게 연속 홈런을 맞았다.
타선이 그대로 물러났다면 기세를 완전히 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5회 공격에서 주자 2명을 두고 나선 버나디나가 두산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우월 스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바로 추격에 나섰다.
타선이 추가 득점에 실패하며 5회 스코어 3-5이 최종 결과가 됐다. 그래도 버나디나가 경기 종료까지 상대를 압박하는 한 방을 터트렸다. 필승조 심동섭, 임창용 그리고 김세현의 호투도 의미가 있었다.
◇ 2차전 - 양현종의 세레모니와 포효, 김주찬의 주루
양현종이 반격을 이끌었다. 이날 그의 투구는 완벽했다. 상대 선발투수 장원준도 무실점을 이어갔다. 이닝을 거듭할수록 압박감은 커졌다. 하지만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8회초 이닝을 마치고 내려오던 그는 두 팔을 한껏 흔들며 관중석의 응원을 유도했다.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KIA 타선도 리드를 안겼다. 행운이 겹쳤다. 선두 타자 김주찬의 우측 방면 타구는 1루수와 2루수 그리고 우익수 사이에 떨어졌다. 이후 희생번트와 볼넷으로 만든 1, 3루 기회에선 두산 야수진의 판단이 아쉬웠다. 나지완이 3루 땅볼을 쳤고 김주찬은 런다운에 걸렸다. 1루 주자의 3루 진루까지 시간을 끄는 게 그의 임무 하지만 더블플레이를 노린 두산 포수 양의지가 주자가 홈플레이에 가까이 있는 상황에서 3루 송구를 했다. 김주찬이 그사이 홈으로 파고 들었고 공보다 먼저 홈을 밟았다.
양현종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다. 안타 한 개를 맞았지만 양의지와의 접전 승부에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한국시리즈에서 1-0 완봉승을 거둔 최초 선수가 됐다. 양현종의 포효와 김주찬의 쇄도. 2차전 명장면이다.
◇ 3차전 - 나지완의 '약속포'
팻딘은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투수였다. 이미 한국시리즈 경험이 있는 두산 선발 마이클 보우덴과의 맞대결도 약세로 점쳐졌다. 하지만 반전을 보여줬다. 팀 타선이 득점을 쌓는 동안 리드를 지켜냈다. 3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고, 4회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줬지만 다시 6회까지 상대 타선을 침묵시켰다. 그사이 KIA는 1차전에서 실책을 범한 안치홍이 '속죄타'를 쳤다. 1-0으로 앞선 4회 2타점 적시타를 치며 점수 차를 벌렸다.
나지완이 쐐기를 박았다. KIA는 4-1로 앞선 7회와 8회 1점씩 내줬다. 1점 차로 추격을 허용했다. 이때 대타로 나선 나지완이 KIA의 시리즈 2승을 이끌었다. 경기 전 김기태 감독은 "나지완은 '조커'로 활용한다"고 했다. 무대가 만들어졌다. 2사 2루에서 상대 마무리투수 김강률을 상대했고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는 타구를 가운데 담장으로 보냈다. 나지완은 2009년 SK와 치른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다. '약속의 9회' 그가 다시 해냈다.
◇ 4차전 - 한 템포 빠른 투수 교체, 김재호의 실책
KIA는 1회초 상대 선발 유희관을 흔들었다. 직구 공략에 집중했고 김주찬이 2루타, 버나디나가 3루타르라 쳤다. 최형우도 내야 안타로 타점을 올렸다. 선발투수 임기영의 호투도 눈부셨다. KIA 중심 타선 타자들을 주무기 체인지업으로 압도했다. 호투가 이어졌고 5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다.
벤치의 판단도 좋았다. 6회 2사 뒤 임기영이 오재일에게 안타를 맞았다. 우익수 이명기가 포구 실책을 하며 득점권 진루까지 허용했다. 이 상황에서 투수를 교체했다. 좌타자 최주환의 타석에서 좌완 심동섭이 나섰다. 이 상황에선 볼넷이 나왔다. 하지만 다시 마운드에 오른 우완 김윤동이 양의지를 범타 처리하며 이닝을 마쳤다.
KIA는 7회 두산 유격수 김재호의 실책을 틈타 추가 득점을 했다. 버나디나는 다시 적시타를 때려냈다. 일찍 가동된 KIA 불펜진은 리드를 지켜냈다. 김윤동이 7회까지 막아냈고 고효준과 임창용, 김세현이 9회를 책임졌다. 4차전 키워드는 김재호의 '실책'과 KIA의 투수 교체 '타이밍'으로 귀결됐다.
◇ 5차전 - '만루 사나이' 이범호, 시리즈를 끝내다
침묵하던 이범호가 KIA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범호는 4차전까지 1안타에 그쳤다. 그나마 4차전에 나온 안타는 득점 포문을 여는 안타였지만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이다.
마지막 무대에서 주인공이 됐다. 이범호는 1-0으로 앞선 3회초 2사 만루에서 더스틴 니퍼트의 초구 슬라이더를 공략해 좌측 담장을 넘기는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 그는 통산 최다 만루 홈런(15개) 기록 보유자다. 이날도 진가를 발휘했다. 우승 반지가 없는 그가 '무임 승차'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 홈런 이후 승부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이범호는 껑충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KIA 선수들과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KIA는 7회 수비에서 6점을 내주며 1점 차로 쫓겼다. 헥터가 연속 4안타와 사구를 내주고 강판됐고, 심동섭과 김세현이 적시타를 허용했다. 깔끔한 승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벌어 놓은 점수가 있었다. 이범호의 홈런이 아니었다면 이날 승리를 물론 시리즈 기세까지 내줄 뻔했다.